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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답사]500년 전 비극의 이별, 그 눈물이 머문 곳… 종로 청룡사 정업원를 가다

  • 박주은 기자
  • 입력 2026.03.17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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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종이 영월 유배 전 마지막 밤을 보낸 '우화루', 정순왕후의 한이 서린 낙산 자락

청룡사뉴.jpg

 청룡사전경

 

 [GK뉴스온 = 박주은 기자] 서울 종로구 숭인동, 낙산 끝자락에 위치한 '청룡사(靑龍寺)'는 평온한 사찰의 풍경 뒤로 조선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사랑과 이별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 따스한 봄볕이 내리쬐는 오늘, 단종과 정순왕후의 마지막 숨결을 찾아 그 현장을 답사했다.

 

단종의 마지막 밤, '우화루'에 맺힌 눈물

청룡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곳 중 하나가 바로 '우화루(雨花樓)'다. 이곳은 1457년, 어린 왕 단종이 영월로 유배를 떠나기 전날 밤, 왕비인 정순왕후와 마지막으로 함께 묵으며 밤새 눈물을 흘렸던 장소로 전해진다.

답사 중 마주한 우화루의 낡은 문틀과 기둥은 당시의 처연한 분위기를 그대로 머금고 있는 듯했다. 꽃비가 내린다는 이름과 달리, 그날 밤 이곳엔 비극적인 운명을 앞둔 소년 왕과 어린 왕비의 슬픈 통곡 소리만이 가득했을 것이다.

 

 

단종마지막밤뉴.jpg

 우화루

 

 

64년의 기다림, 정순왕후의 '비구니 삶'

단종을 떠나보낸 정순왕후는 청룡사 인근에 '정업원(淨業院)'을 짓고 비구니가 되어 평생을 보냈다. 그녀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인근 낙산 앞바다(동망봉)에 올라 단종이 유배된 동쪽을 바라보며 안녕을 빌었다고 한다.

사찰 한쪽에 자리 잡은 제각과 세월의 풍파를 견뎌낸 노송(老松)은 마치 정순왕후의 굳건한 절개와 긴 기다림을 상징하는 듯하다. 굽이진 소나무 가지 하나하나에 단종을 향한 그녀의 그리움이 서려 있는 것만 같아 방문객들의 마음을 숙연하게 만든다.

 

 

노송뉴.jpg

 노송

 

 

 '왕비였던 곳을 얻다', 정업원득비각(淨業院得卑閣)

청룡사 바로 옆에는 작은 비각 하나가 서 있다. 이것이 바로 '정업원 터'임을 알리는 정업원득비각이다. '정업원'은 왕실 여인들이 출가하여 머물던 곳을 말한다.

 

비각 안의 비석 앞면에는 영조가 친필로 쓴 '정업원구기(淨業院舊基)'(정업원의 옛 터)라는 글씨가, 뒷면에는 '전봉후암 어천만년(前峰後巖 於千萬年)'(앞산과 뒷바위여, 천만년토록 변치 마라)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이는 정순왕후가 뒷산 바위(동망봉)에 올라 영월 쪽을 바라보며 단종의 안녕을 빌었던 그 지극한 정성을 기리기 위해 영조가 세운 것이다.

 

정업원뉴.jpg정업원득비각(淨業院得卑閣)

 

정업원비.jpg

정업원 사적비

 

 

마지막 밤의 기록과 '동망봉'의 슬픔

청룡사 인근에는 단종과 정순왕후가 유배 전날 마지막 밤을 보냈다는 흔적들이 남아 있다. 좁은 문틈 사이로 서로의 안부를 묻지도 못한 채 눈물로 밤을 지새웠을 그들의 마지막은 인근 '영도교'에서의 영원한 이별로 이어진다.

 

정순왕후는 그 후 6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곳에서 염색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여인들이 옷감을 날랐을 법한 소나무와 낡은 제각의 풍경은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그날의 쓸쓸함을 머금고 있는 듯하다.

 

역사와 현대가 공존하는 치유의 공간

현재의 청룡사는 복잡한 도심 속에 자리하고 있지만, 일주문을 지나 경내로 들어서는 순간 500년 전의 시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묘한 정적을 선물한다. 단종과 정순왕후의 이별은 비극이었으나, 그들이 남긴 사랑과 절개의 정신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참된 인연과 가치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이번 주말, 화려한 명소 대신 단종과 정순왕후의 애달픈 서사가 깃든 청룡사를 찾아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는 것은 어떨까.

 

박주은 기자 (GK뉴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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