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KNEWSON] "가장 지혜로웠으나 가장 어리석었던 결말"…성경이 말하는 솔로몬 타락의 ‘진짜 이유’
예루살렘 성전 지은 손으로 우상 제단 쌓아… 하루아침의 배신 아닌 ‘천천히 기울어진 마음(나타)’이 비극 불러
백성들에겐 파라오 같은 강제 노역(마스) 지워… 찬란한 전성기 뒤에 가려진 빛과 그림자
수많은 이들에게 인류 역사상 가장 지혜로운 왕으로 기억되는 인물, 솔로몬. 성경 속에서 전무후무한 지혜의 축복을 보증받았던 그가 왜 말년에는 우상 숭배와 왕국의 분열이라는 비참한 결말을 맞이하게 되었을까.
흔히 그의 타락을 '천 명의 아내'라는 이성(異性) 문제나 외교적 실책으로만 치부하곤 한다. 그러나 성경이 밝히는 진짜 이유는 우리가 알고 있던 표면적인 사실과는 전혀 다른 곳을 가리키고 있다.
■ ‘듣는 마음(레브 쇼메아)’을 구했던 청년 왕의 눈부신 시작
기원전 967년 기브온의 밤, 살 남짓한 젊은 왕 솔로몬은 천 마리의 번제를 바치며 하나님 앞에 두 손을 떨며 무릎을 꿇었다. 무엇이든 구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그가 청한 것은 부도, 권력도, 원수의 죽음도 아닌 오직 하나, 백성을 올바르게 재판할 수 있는 ‘듣는 마음(히브리어: 레브 쇼메아)’이었다. 말이 아니라 마음의 진실을 읽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한 것이다.
이 지혜는 곧장 시험대에 올랐고, 한 아이를 두고 다투는 두 어머니의 깊은 본능을 칼 한 자루로 꿰뚫어 보며 온 이스라엘을 전율케 했다. 이후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의 평생 숙원이었던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기 시작했다. 7년의 건축 기간 동안 현장에서는 망치나 도끼 같은 철 연장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 철저한 정적과 거룩함 속에서 순금으로 뒤덮인 성전이 완공됐다. 하나님의 영광이 구름처럼 가득했던, 그야말로 솔로몬 인생의 최정점이었다.
■ 찬란한 전성기 이면에 숨겨진 균열, 파라오가 된 왕
성전 완공 후 솔로몬 왕국은 매년 20톤에 달하는 금이 쏟아져 들어오고 은을 길바닥의 돌처럼 흔하게 여길 만큼 대전성기를 맞이했다. 스바 여왕이 2,000km를 걸어와 감탄할 정도로 명성이 자자했다.
그러나 이 찬란함의 바닥에서는 백성들의 등이 휘어지고 있었다. 솔로몬은 화려한 왕궁과 요새, 마구간을 짓기 위해 온 이스라엘에서 18만 명이 넘는 이들을 강제 노역에 동원했다. 성경은 이 강제 노역을 가리켜 히브리어로 ‘마스(Mas)’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단어는 과거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 파라오 밑에서 고통받던 노예 시절의 노역을 뜻하는 단어와 같다. 출애굽한 지 480년 만에, 하나님의 백성을 다스리는 왕이 스스로 파라오처럼 군림하기 시작한 것이다.
■ 하루아침의 배반이 아닌, 조금씩 ‘기울어진 마음’
성경은 솔로몬의 타락을 기록할 때 ‘버렸다’ 혹은 ‘배반했다’ 같은 단절의 언어를 쓰지 않는다. 열왕기상 11장 4절에 등장하는 ‘마음을 돌려’의 히브리어 원어는 ‘나타(Nata)’로, ‘서서히 조금씩 기울어지다, 구부러지다’라는 뜻을 가진다.
시작은 이집트 공주와의 정략결혼이었다. 외교적 성과라는 합리적인 명분 뒤로 암몬, 에돔, 시돈의 여인들이 차례로 들어왔고, 천 명의 여인과 함께 천 개의 이방 신이 예루살렘으로 스며들었다. "고향 신에게 분향할 작은 자리 하나만 허락해 달라"는 아내들의 작은 부탁에 솔로몬의 마음은 수십 년에 걸쳐 조금씩, 자신도 모르게 기울어졌다.
그 결과, 아침에는 하나님의 성전에서 예배하고 오후에는 이방 여신에게 분향하는 반쯤 기울어진 괴물이 되었다. 마침내 성전이 바로 바라보이는 맞은편 감남산 위에 인신 공여(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의식)를 행하는 혐오스러운 신 ‘몰렉’의 제단까지 세우기에 이르렀다. 성전의 거룩한 연기와 우상의 역겨운 연기가 불과 몇백 미터를 사이에 두고 같은 하늘로 피어오르는 비극이 연출된 것이다.
■ 회개 대신 암살을 선택한 노인… ‘노십대’로 전락한 왕국
하나님은 일찍이 두 번이나 나타나 경고하셨으나 솔로몬은 듣지 않았다. 사울에게는 사무엘이, 다윗에게는 나단이 있어 죄를 지적했을 때 무릎을 꿇었지만, 솔로몬의 곁에는 쓴소리를 해줄 예언자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나라를 찢어 신하에게 주겠다는 하나님의 심판(옷 12조각의 예언)이 임했을 때도, 아버지 다윗처럼 옷을 찢고 회개하는 대신 예언 성취의 주인공인 여로보암을 ‘암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지혜를 구하던 청년은 사라지고, 자신의 안위를 위해 칼을 휘두르는 어리석은 노인만 남았다.
솔로몬이 죽은 후, 과도한 노역에 지쳐있던 백성들은 등을 돌렸고 왕국은 단 하루 만에 남과 북(10 대 1의 비율)으로 두 동강이 났다. 그가 쌓아 올린 금빛 영광은 불과 5년 만에 이집트 왕 시삭의 침략으로 모조리 약탈당했고, 그 자리는 번쩍이지만 진짜가 아닌 ‘놋방패’로 대체됐다. 겉모습은 그럴싸하지만 안은 이미 완전히 가치 하락한 ‘놋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 "내 마음을 지키라"… 실패한 왕이 남긴 살아있는 경고
솔로몬이 말년에 모든 부귀영화와 집착을 내려놓고 쓴 것으로 전해지는 전도서의 첫 대목은 다음과 같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전도서 1:2)"
여기서 '헛되다'는 히브리어 **‘해벨(Hebel)’**로, 허무가 아니라 손에 잡히지 않고 금방 사라지는 ‘증기, 숨결, 안개’를 뜻한다. 평생 바람을 잡으려는 것처럼(바람을 목축하듯) 금과 여인과 지혜를 모았으나, 손을 펴보니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는 고백이다.
솔로몬은 자기가 쓴 잠언에서 *"내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직접 기록했으면서도, 정작 자신의 마음은 지키지 못하고 나타(기울어짐)를 방치해 실패했다. 야곱, 모세, 다윗과 달리 성경은 솔로몬의 마지막 유언이나 회개의 한 줄을 단 한 마디도 기록하지 않은 채 깊은 침묵으로 그의 끝을 알린다.
비록 솔로몬이라는 인간은 실패해 비참한 최후를 맞았지만, 그가 남긴 3,000개의 잠언과 전도서의 말씀은 3,000년이 지난 지금도 살아남아 우리에게 묻고 있다.
나는 지금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가, 아니면 세상의 유혹과 타협 속에 나도 모르게 ‘조금씩 기울어지고(나타)’ 있지는 않은가.
GKNEWSON 선우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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