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장동원 [수필가, 제20대 수도전기공고 교장]
마라톤에 푹 빠진 친구가 있다. 풀코스를 250회 넘게 완주했다기에, 놀라서 물었더니 1,000회를 넘긴 아마추어도 있고, 울트라 마라톤은 밤낮으로 더 먼 거리를 달린다고 겸손해했다.
학창 시절부터 잘 흔들리지 않는 묵직함과 넉넉한 그의 품성인지라, 무념무상으로 달리는 마라톤이 잘 어울리고 멋있어 보였다.
그런데 그가 이제는 맨발로 마라톤을 뛴다고 하여 깜짝 놀랐다. 물론 옛날부터 전설은 있었다. 1960년 아베베 선수가 로마올림픽에서 맨발로 마라톤 세계신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1964년 도쿄올림픽 우승 시에는 그도 운동화를 신었다. 그야말로 역사 속의 이야기다. 건강을 위한 맨발 걷기가 유행하고 있지만 어찌 마라톤을 맨발로 뛴단 말인가?
요즘 맨발 걷기는 전국적으로 인기다. 산에서도 맨발의 등산객을 심심치 않게 만난다. 맨발 황톳길 코스도 속속 늘고 있다. 의학계에서 입증한 것은 아니지만, 맨발 접지 효과와 지압 효과가 탁월하다고 한다.
맨발로 걸으면 됐지, 굳이 42,195미터를 무모하게 맨발로 뛰냐고 어렵게 말했다. 쉽게 대답한다. 처음에는 맨발로 걷다가 괜찮아 보여서 슬슬 뛰었다는 것이다. 우선 동네에서 운동장 한 바퀴 맨발로 뛰고 점차 5키로, 10키로... 파상풍을 걱정했더니 굳은살로 단련된 발바닥을 보여준다.
시작할 때 발바닥이 좀 아팠지만 뛸 만했다는 것! 드디어 국내 00마라톤에서 맨발 마라톤 완주에 성공하고, 얼마 전에는 세칭 세계 8대 마라톤 중 하나라는 ‘남아공 마라톤’에 가서 맨발로 뛰고 왔다는 것이다. 갈수록 태산이다.
‘외국인 맨발 마라토너도 있더냐’ 물으니, 서양 여자 한 명을 봤는데 전 구간 맨발 완주 했는지는 모르겠다고 답한다.
앞으로 가능하면, 세계 8대 마라톤에 가서 맨발로 뛰겠단다. 사실, 그가 세계 8대 마라톤을 맨발로 뛰든 안 뛰든 별 관심은 없다. 좋아서 하니 말릴 재간도 없지만 부디 다치지 않기만 기원할 뿐이다. 얼마 전 함께 다녀온 백두산 (중국 장백산) 여행에서도, 그는 양말을 훌렁 벗고 끝까지 맨발로 올랐다. 그 외 여행 코스에서 시간만 되면 늘 맨발로 다녔다.
인류의 조상들이 산과 들로 돌도끼 하나 들고 뛰어다녔을 때 신발이 뭔 소용이었을까 싶다. 그도 살갗과 대지가 만나는 원시 느낌을 즐기는 것으로 이해하기로 했다. 오래전 요한바오로2세 교황이 김포공항에 내려 땅에 엎드려 입맞춤한 장면도 문득 떠올랐다. 사람이 땅과 만난다는 건 어쩌면 참으로 경건한 것이다.
작은 사업체를 건실하게 경영하는 그도 일면 경건하다. 중소기업 경영도 만만치 않을 것인데, 젊은이에게는 마라톤보다 애정이 크다. 인연이 된 많은 곳에 미래 세대를 위해 장학금을 낸다. 필자가 학교장이었을 때 어렵게 꺼낸 장학금 이야기에도 흔쾌히 도움을 줬다. 크고 작은 모임에 자주 기여한다. 주변에 먼저 헤아리고 지원한 따뜻한 스토리가 많다.
며칠 전에는 그와 모처럼 맨발 마라톤 이야기 없이, 맥주를 나눴다. 종로3가 뒷길은 하늘이 훤히 열린 길거리 테이블이 늘어선 맛집과 보행자 천국이다. 전 세계 여행자가 북적인다. 우리가 앉은 옆 테이블에도 외국인이 자리했다. 갈색 머리 파란 눈의 젊은 커플이 맥주를 마신다. 주문과 서빙으로 분주한 알바생이 베트남 유학생이라고 하자, 그는 어느새 젊은이에게 살며시 용돈을 쥐여줬다. 훈훈해졌다.
잠시 후 일본인 여행자가 한쪽 테이블을 채웠다. 부모와 젊은 딸 청소년 아들 단란한 4인 가족이다. 일본 미에현 시골에서 왔다며 우리가 먹는 음식을 물어보더니 같은 메뉴를 주문했다. 친구는 “한국에 온 걸 환영합니다.” 한 마디를 건네며 맥주 2병을 추가로 시켜 그 좌석에 넌지시 밀어 놓았다. 우리와 그들 양쪽에 미소가 번졌다.
한여름 도심의 하늘 아래서, 즐거움 가득한 그의 맑은 눈빛을 봤다. 그런데 어디선가 봤던 눈빛이다. 맨발 마라톤 이야기할 때마다 유난히 반짝이던 그 눈빛이다. 백두산 꼭대기 차가운 흙에 맨발로 서서 보여준 그 눈빛이다.
허울 벗고 사람을 만날 때 그리고 신발 벗고 땅의 촉감을 느낄 때, 그 눈빛은 똑같이 빛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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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재)역사인물화문화재단 감사 ▲(주)일진파워 고문 ▲제20대 수도전기공고 교장 ▲한전 홍보실장 ▲한전 도쿄지사장 ▲「매경춘추」 「한경에세이」 「전기신문」 필진 ▲bbb코리아 통역봉사자 ▲ 서울글로컬교육연구원 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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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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