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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K뉴스온]“그때는 몰랐지만”… 어머니는 왜 쓰러져가는 집을 '고래등'이라 했나

  • 안재민 기자
  • 입력 2026.10.15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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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문희 작가 7년 만의 첫 장편… 20년 일본어 강사, 동네 도서관 동아리서 키운 문장으로 경북 영주 'ㅁ자 한옥'과 세 자매의 화해 그려

 

 

(GK뉴스온 디지털팀장 안재민 기자)

 

딸들에게 그 집은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은 가난의 상징이었지만, 어머니는 같은 집을 두고 늘 '고래등 같은 집'에 산다며 자랑했다. 고문희 작가의 첫 장편소설 『그때는 몰랐지만』(북인)은 막내딸이 무너진 그 집의 벽을 다시 바르며 어머니 말의 뜻을 뒤늦게 깨달아 가는 이야기다.

 

○ 같은 집, 서로 다른 기억

 

소설의 무대는 경북 영주 산골 마을에 서 있는 낡은 'ㅁ자 한옥'이다. 겉으로는 폐가처럼 보이지만, 젊은 시절 금광을 찾아 떠돌던 아버지가 직접 캐낸 금을 팔아 손수 지어 올린 집이다.

그 집에서 자란 1남 3녀의 사정은 저마다 다르다. 어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외아들은 일찍 세상을 떠났고, 방랑하는 남편 대신 집안을 지탱하던 어머니도 아버지보다 먼저 눈을 감았다. 큰딸 정순과 둘째 화순은 일찍 고향을 등졌고, 늙고 몸이 불편해져 돌아온 아버지를 받아준 어머니를 끝내 이해하지 못했다.

홀로 남은 아버지를 돌보는 일은 막내 석순의 몫이 됐다. 도시에서의 고단한 삶에 지쳐 있던 석순은 생전의 어머니가 입버릇처럼 하던 '고래등 같은 집'이라는 말을 떠올리고, 결국 그 집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는다.

 

▶ 백만 원, 그리고 다락 속 일기장

귀향은 작은언니의 중고차를 100만 원에 넘겨받으면서 시작된다. 셈이 정확한 언니를 떠올리면 마음 한구석이 무겁지만, 석순은 그 차를 몰고 고향으로 향한다. 언니들은 동생의 귀향도, 집수리도 반기지 않는다.

석순은 묵묵히 집을 쓸고 닦으며 무너진 벽을 바른다. 그러던 어느 날 다락을 정리하다가 어머니가 간직해 온 큰언니와 오빠의 물건, 그리고 작은언니의 일기장을 발견한다. 그 흔적들 앞에서 석순은 가족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버텨왔다는 사실을 비로소 받아들이게 된다.

 

○ 이 이야기를 쓴 사람은 누구인가

 

경북 문경에서 태어나 인천 영종도에 사는 고문희 작가는 20여 년 동안 일본어를 가르치고 통·번역 일을 해온 생활인이다. 문예창작을 전공하지도, 신춘문예를 거치지도 않은 그가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은 마흔 후반이던 2010년, 집 근처 영종도서관의 독서·창작동아리 '섬마을 문학동네'에 창립 멤버로 참여하면서부터다.

이후 그는 생업을 이어가면서 새벽 시간을 쪼개 습작에 매달렸고, 그렇게 5년을 보냈다. 동네 도서관 동아리에서 시작한 글쓰기가 전국 문단의 주목을 받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 1,239편 가운데 뽑힌 「떼」

2015년 제7회 목포문학상에는 406명이 1,239편의 작품을 응모했고, 소설 부문 본상은 고문희의 단편 「떼」에 돌아갔다. 작가는 버스비를 내지 못해 버스에서 쫓겨나는 중년 남성을 목격한 경험을 바탕으로, 사회에서 밀려나지 않으려 애쓰는 소시민의 모습을 그물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버둥대는 멸치 떼에 빗대어 그려냈다.

그는 이어 천강문학상 우수상과 한겨레21 손바닥문학상 가작을 받았고, 2019년 계간 『문학나무』를 통해 등단하면서 첫 소설집 『세상의 모든 아들은 아버지를 닮았다』를 펴냈다.

 

○ 듣고, 거들고, 머문다

 

소설 속 한옥에는 실제 모델이 있다. 몇 년 전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시부모가 살던 낡은 집을 남편과 함께 고쳐 살고 있는, 경북 영주의 작가 친구 집이다.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그 집과 맺은 인연을 이렇게 적었다.

"나는 집을 수리하기 전 찾아가 친구의 꿈을 들었고, 수리할 때 잠깐 일손을 거들었고, 수리 후 며칠 그곳에 머물며 그간의 얘기를 들었다."

이야기를 찾아 나서기보다 먼저 곁에 머물며 귀 기울이고, 함께 몸을 움직이며 얻은 경험을 문장으로 옮기는 것이 고문희의 글쓰기 방식이다. 그는 그때 보고 들은 이야기를 한동안 묵혀 두었다가 시간이 흐른 뒤에야 장편으로 완성했다.

 

▶ 자매들의 단편이 할머니 집이 되기까지

이 작품은 처음부터 장편으로 기획된 것이 아니었다. 작가는 "소설의 시작은 자매들 얘기가 중심인 단편이었다"며, 동료 작가들과 함께 공부하던 중 장편으로 확장해 보자는 의견이 나와 집을 수리하는 장면과 인물들의 사연을 깊이 파고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작가의 말에 붙인 '자매들 이야기에서 할머니 집으로'라는 제목은 이 과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 7년, 아버지를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다

 

7년 전 첫 소설집에 등장한 아버지들은 대부분 무너진 가장이었다. 손바닥문학상 수상작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의 주인공은 사고로 생계를 잃은 뒤 휴대폰에 저장된 126명에게 연락을 시도하지만, 끝내 누구와도 온전히 닿지 못한다.

작가는 당시 수상 소감에 「그때의 밥상이 그립다」라는 제목을 붙였다. 가족이 함께 둘러앉던 밥상의 기억을 그리워했던 그 마음은 7년이 지나 집 한 채로 확장됐다. 신작 속 아버지 역시 방랑으로 가족에게 상처를 남긴 인물이지만, 동시에 자신의 손으로 가족이 살 집을 지어 올린 사람으로 그려진다.

소설은 수리를 마친 집에서 이웃과 소박한 잔치를 여는 장면으로 향한다. 오랫동안 사이가 멀었던 석순의 딸도 내려와 할아버지 곁에서 서까래에 황토를 바르며 함께 웃는다.

 

○ 당신에게도 그런 집이 있는가?

 

추천사를 쓴 이순원 소설가는 어떤 생명도 자신이 태어날 곳을 고를 수 없다는 이야기로 이 소설을 소개하며, "태어난 다음 온갖 풍파를 이겨내고 더 반듯하게 자라고 더 잘 자라는 것만 생명이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야기의 끝에서 석순은 집이란 사람을 품고, 사람은 또 집을 품어 온기가 머무는 곳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어머니가 왜 그 낡은 집을 '고래등 같은 집'이라 불렀는지도 그제야 이해하게 된다.

마흔 후반에 동네 도서관에서 첫 문장을 쓴 작가는 16년 만에 그렇게 한 채의 집을 지어 올렸다. 책장을 덮고 나면, 오래 잊고 지낸 자신의 고향집 마루를 한 번쯤 떠올리게 될 것이다.

 

『그때는 몰랐지만』(북인·180쪽)은 10월 18일 출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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