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K이민형칼럼]
글 이민형 인덕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교수
2026년 6월 3일, 지방선거가 끝났다. 개표 결과가 속속 확정되는 동안 거리 곳곳에는 후보들의 얼굴이 담긴 현수막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선거가 끝나면 이 모든 것은 폐기된다. 현수막은 쓰레기가 되고, 리플렛은 재활용함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아무도 묻지 않는다. 이 수십만 장의 디자인 결과물이 과연 제 역할을 했는가?
이것이 한국 정치와 디자인의 현주소다.
선거철마다 대한민국의 거리는 디자인으로 넘쳐난다. 후보의 얼굴과 이름이 담긴 현수막, 공약을 빼곡히 채운 리플렛, 선거 사무소의 간판, SNS를 가득 메우는 카드뉴스까지. 그 물량만 보면 가히 압도적이다. 그러나 질적으로 바라보는 순간, 탄식이 나온다. 후보마다 거의 동일한 구도의 증명사진, 비슷한 색깔, 비슷한 서체, 비슷한 문구. 유권자는 수백 명의 후보를 보지만, 기억에 남는 얼굴은 거의 없다. 디자인이 기능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디자인은 단순한 꾸밈이 아니다. 디자인은 메시지다. 후보가 어떤 색을 선택하느냐, 어떤 서체를 쓰느냐, 사진을 어떤 구도로 배치하느냐 등 이 모든 것이 후보의 정체성과 가치관을 유권자에게 전달한다. 유권자는 공약집을 꼼꼼히 읽기 전에, 그 후보를 먼저 ‘느낀다’. 현수막을 스치듯 바라보는 3초 안에 신뢰감을 느끼거나 외면한다. 그 3초를 지배하는 것이 디자인이다.
그런데도 한국 정치는 이 사실을 외면한다. 대부분의 후보들은 선거 직전에야 급하게 인쇄소를 찾는다. 전문 디자이너를 기용하는 경우는 드물고, 기성 템플릿에 이름과 얼굴만 교체하는 방식이 관행처럼 굳어져 있다. 수천만 원의 선거 비용을 쓰면서도 디자인 예산은 최소화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는 디자인을 ‘부수적인 것’,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인 것’으로 여기는 인식에서 비롯된다.
기업의 세계는 다르다. 글로벌 기업들은 로고 하나를 바꾸는 데 수억 원을 투자하고 수년을 준비한다. 소비자의 마음을 얻기 위한 브랜딩 전략을 수립하고, 색채 심리학과 타이포그래피 이론을 치밀하게 적용한다. 그것이 곧 시장에서의 경쟁력이기 때문이다. 유권자의 마음을 얻어야 하는 정치인이라면, 기업보다 더 진지하게 디자인을 고민해야 마땅하다. 지갑을 여는 것보다 마음을 여는 것이 훨씬 어렵기 때문이다.
2026년 지방선거가 끝난 지금, 우리는 냉정하게 돌아봐야 한다. 이번 선거에서 당선된 후보들은 얼마나 설득력 있는 시각 언어를 구사했는가. 낙선한 후보들은 디자인의 실패로 잃어버린 기회가 얼마나 되는가. 아무도 이 질문을 하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문제다.
선거가 끝난 후 현수막이 걷히고 리플렛이 버려지듯, 디자인에 대한 반성도 함께 사라진다. 그리고 4년 뒤, 똑같은 실수가 반복된다. 이 악순환을 끊으려면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 디자인은 선거의 마지막 단계가 아니라 첫 번째 전략이어야 한다. 후보가 자신의 정치적 철학을 정립하는 순간부터, 그 철학을 시각적으로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
정치는 결국 소통이다. 그리고 디자인은 가장 강력한 소통의 언어다. 당색 하나, 로고 하나, 현수막의 여백 하나가 후보의 정체성을 말한다. 한국 정치가 디자인을 진지하게 대우하기 시작할 때, 비로소 유권자와의 진정한 소통이 시작될 것이다.
디자인이 정치를 말한다. 우리는 이제 그 말을 진지하게 들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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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형 인덕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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