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11월이면 온 나라가 숨을 죽인다. 비행기 이착륙이 미뤄지고, 출근 시간이 조정되고, 수백만 명의 학부모가 자녀보다 더 긴장한 채 하루를 보낸다. 대학수학능력시험, 이른바 수능이다. 도입된 지 30여 년이 지났지만, 이 하루짜리 시험이 한 사람의 12년 학업과 미래를 결정한다는 사실은 여전히 낯설다.
이제는 물어야 할 때다. 수능을 폐지하고 대학입시를 대학 스스로에게 맡기면 안 되는가.
수능이 만들어진 이유는 분명했다. 전국 단일 기준으로 학생을 줄 세워 공정성을 확보하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그 공정성은 이제 허상에 가깝다. 사교육비는 매년 최고치를 경신하고, 부모의 경제력이 곧 자녀의 점수로 이어진다는 통계는 낯설지 않다. 한 번의 시험으로 인생이 갈린다는 압박은 학생들의 정신건강을 갉아먹고, 창의적 사고보다 문제 풀이 기술만 훈련시킨다. 정작 대학은 자신들이 원하는 인재를 뽑을 권한을 갖지 못한 채, 교육부가 정한 시험 점수표를 받아들 뿐이다.
미국이나 유럽 상당수 대학은 표준화 시험 성적뿐 아니라 에세이, 추천서, 활동 이력, 면접 등을 종합해 학생을 선발한다. 완벽한 제도는 아니지만, 적어도 대학이 자신의 교육 철학에 맞는 학생을 스스로 고를 자율성은 있다. 우리도 이제 대학에 그 권한과 책임을 돌려줄 때가 됐다. 서울대가 원하는 인재상과 지방 전문대가 원하는 인재상이 같을 수 없다. 획일적인 국가시험 하나로 모든 대학의 입시를 재단하는 것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다.
물론 우려는 있다. 대학 자율 선발이 확대되면 이른바 '깜깜이 전형'이 늘어나고, 오히려 인맥과 특목고 출신에게 유리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학종(학생부종합전형) 확대 과정에서 이런 부작용이 이미 드러난 바 있다. 그래서 수능 폐지는 대학에 백지수표를 주는 것이 아니라, 투명한 선발 기준 공개와 독립적인 감사 체계를 전제로 해야 한다. 대학별 입시 결과와 평가 기준을 공공기관이 상시 검증하고, 특정 계층에 유리한 전형은 제재할 장치가 함께 마련돼야 한다.
지역 인재 전형처럼 지역균형을 고려한 제도적 보완도 병행돼야 한다. 자율과 방임은 다르다. 대학에 선발권을 돌려주되, 그 권한이 다시 불평등을 재생산하지 않도록 사회적 감시망을 촘촘히 짜는 것이 정부와 국회가 할 일이다.
수능이라는 단일 잣대를 걷어내는 순간, 학생들은 하루의 컨디션이 아니라 3년, 12년의 배움 전체로 평가받을 기회를 얻는다. 대학은 진짜 원하는 학생을 뽑을 자율성을 얻고, 그만큼 무거운 책임도 함께 진다. 이제는 국가가 대신 시험지를 채점해주는 시대를 끝내고, 교육의 본질적 주체인 대학과 학생에게 그 판단을 돌려줄 때다.
선종복 서울교육삼락회장,前 서울북부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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