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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K뉴스온]"술이 줄어든 게 아니라 몸의 계약서가 바뀐 것"… 박상철 교수가 전하는 백세인의 '음주 패러독스'

  • 박주은 기자
  • 입력 2026.08.17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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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KNEWS = 박주은 기자] 나이가 들수록 어제와 같은 양의 술을 마셔도 다음 날 아침 느껴지는 피로감과 숙취는 배가 되곤 한다. 흔히 "주량이 줄었다" 혹은 "체력이 예전만 못하다"라며 넘어가기 쉽지만, 생물학적으로는 몸이 술에 반응하는 방식 자체가 완전히 바뀌었다는 정직한 신호다.

 

유튜브 채널 '책읽는 자작나무'에서 소개된 책 『술 패러독스』(서울셀렉션)의 저자 박상철 전 서울대 의대 교수는 한국의 백세인(100세 이상 장수 노인) 연구를 이끌어온 대표적인 생화학자다. 그는 젊은 시절 콩나물 뿌리의 숙취 해소 성분을 밝혀내는 등 알코올 연구에 성과를 냈으나, 개발한 숙취해소제가 오용되어 독을 더 많이 마시게 만드는 도구로 쓰이는 것을 보고 30년간 연구를 중단했었다. 이후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 "술을 무조건 끊으라"는 공허한 권고 대신, 건강하게 오래 사는 이들의 음주 방식을 분석하며 다시 연구 결과를 세상에 내놓았다.

 

 

■ 몸이 다시 쓴 계약서: "술이 약해진 게 아니라 그릇이 작아졌다"

 

박상철 교수는 노년기 음주 부담이 커지는 이유를 생물학적 변화로 설명한다.

 

줄어든 수분 용량 (그릇의 축소): 알코올은 기름이 아닌 물에 녹는다. 젊은 성인의 몸은 수분 비율이 높지만 나이가 들수록 세포 속 수분이 줄어든다. 20대의 몸이 200L 수족관이라면 70대의 몸은 120L 어항과 같다. 같은 양의 잉크(술)를 떨어뜨려도 작은 어항 속 농도가 훨씬 진해지듯, 몸 체액량이 줄어 혈중 알코올 농도가 훨씬 더 가파르게 오른다.

 

좁아진 배수구 (간 대사 능력 저하): 간에서 알코올을 1차로 아세트알데하이드(1급 발암물질)로 분해한 뒤, 2차로 무해하게 청소하는 기능이 50대 이후 크게 떨어진다. 독성은 예전 속도로 만들어지는데 청소부는 절반만 출근한 상태가 되는 셈이다. 60대 중반 기준 소주 두 잔이 받는 생체 부담은 30대 시절 소주 여덟 잔과 맞먹는 수준으로 증가한다.

 

또한 나이가 들수록 alcohol이 뇌 혈관 장벽을 통과해 뇌 용적 감소를 가속화하고, 깊은 수면 단계에서 이뤄지는 '뇌 척수액 노폐물 청소(치매 원인 단백질 배출)'를 방해하며, 근육 합성 스위치를 꺼 낙상 위험을 급증시킨다는 점도 지적된다.

 

 

■ 백세인의 비밀: "알코올이 아닌 '사람과의 연결'을 마셨다"

 

그렇다면 세계적인 장수 지역인 '블루존(Blue Zones)'이나 국내 장수 지역(구례·곡성·순창·담양 등)의 100세 어르신들이 매일 술을 즐기면서도 장수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박 교수는 "장수의 이유는 술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술을 마시는 방식에 있다"고 단언한다.

이탈리아 사르데냐 섬의 백세인들은 와인 한 잔을 90분에 걸쳐 천천히 마신다. 혼자가 아니라 마을 광장에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식사와 함께 마시는 방식이다. 소화 및 간 대사 속도를 넘어서지 않도록 조절되며, 잔에 담긴 것은 알코올 그 자체보다 유대감과 공동체의 연결성이었다. 실제로 30만 명 대상의 연구에 따르면 강한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의 생존 가능성이 고립된 사람보다 50% 가까이 높으며, 독거와 고립이 주는 위험성은 하루 담배 15피우는 것과 비등하다.

 

 

■ 만성질환 약 복용 시 반드시 피해야 할 '3가지 위험 조합'

 

특히 65세 이상 어르신 다수가 만성질환 약을 복용하는 만큼, 약과 술이 몸속에서 만날 때 발생하는 독성에 대해 강력한 주의를 당부했다.

 

수면제 + 술: 둘 다 뇌 신경을 가라앉히는 물질로, 함께 작용하면 효과가 곱해져 뇌의 호흡 중추까지 억제해 자는 동안 수면 무호흡 및 영구적 인지 손상을 유발할 수 있다.

 

타이레놀 + 술: 술을 마신 날과 그다음 날(48시간 이내)에는 아세트아미노펜 계열 진통제를 절대 복용해서는 안 된다. 간에서 독성 물질이 생성되는 비율이 급증하고 이를 막을 방패는 고갈되어 급성 간부전을 일으킨다.

 

혈압약·당뇨약 + 빈속 음주: 혈압약과 술이 만나면 저혈압으로 인한 기립성 어지럼증과 낙상이 발생한다. 당뇨약 복용 중 빈속에 술을 마시면 간이 알코올 분해를 우선시하느라 혈당 조절을 멈춰 자는 동안 치명적인 저혈압·저혈당 쇼크에 빠질 수 있으므로, 음주 시 반드시 식사를 곁들여야 한다.

 

 

■ "술잔을 채우기 전에 관계를 채워라"

 

박상철 교수는 삶의 마지막 17년가량을 병상이나 타인의 도움에 의존해 보내는 '건강수명 격차'를 줄이는 것이 건강 장수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술을 절제하고 건강한 습관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혼자 걷고 여행하며 삶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을 '올림픽 한 주기(약 4~5년)' 이상 더 확보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술이 문제였던 적은 없다. 문제는 그 잔을 혼자 들었느냐였다."

외로움과 고립을 달래기 위해 혼자 마시는 '혼술'을 피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눈을 맞추며 이야기와 풍미를 음미하는 단 한 잔의 유대감. 그것이야말로 100세 시대를 살아가는 가장 지혜로운 음주법이다.

[GKNEWS = 박주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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