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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K OPEN SCHOOL]단두대에서 '유토피아'를 꿈꾼 천재, 토마스 모어의 불꽃 같은 삶과 비극적 최후

  • 선우진 기자
  • 입력 2026.07.04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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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K OPENSCHOOL=선우진 기자] 1535년 7월, 잉글랜드 런던의 타워힐 광장은 무더위 속에서 한 사내의 처형을 지켜보기 위해 모여든 수천 명의 군중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단두대 위로 오른 이는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왕의 오른팔이자 최고 권력자인 대법관이었던 사내, 바로 토마스 모어였다.

 

긴 수감 생활로 뼈만 남은 앙상한 몰골의 노인이 된 그는 죽음을 불과 몇 초 앞두고도 구광의 군사에게 "올라갈 때는 제발 나를 좀 도와주게나, 내려올 때야 내가 알아서 내려올 테니"라는 선늘하고도 유쾌한 농담을 던졌다. 처형 집행관에게 금화를 쥐여주며 위로하고, 마지막 순간에는 "이 수염은 국왕 폐하에게 그 어떤 반역도 저지른 적이 없으니 도끼에 잘릴 이유가 없다"며 긴 수염을 조심스레 젖혀놓은 채 "나는 국왕의 좋은 신하이기 전에 신의 좋은 종으로 죽노라"라는 웅장한 한마디를 남겼다. 당대 최고의 지성이자 헨리 8세의 절친한 동반자였던 그는 왜 이토록 차가운 단두대 위에서 생을 마감해야 했을까.

 

 

찬란한 지성과 광기 어린 신앙의 공존

 

1478년 런던의 유복한 법조인 가문에서 태어난 토마스 모어는 아버지가 바라는 대로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탄탄대로의 삶을 보장받은 듯했다. 하지만 청년 시절 깊은 정체성의 혼란을 겪으며 엄격한 카르투시오 수도원에 들어가 4년간 고행을 이어갔다. 비록 세속의 욕망을 완전히 지우지 못해 다시 세상 밖으로 나왔지만, 이때 새겨진 종교적 결벽증은 평생 그의 영혼을 지배했다. 그는 대법관이 되어 부귀영화를 누리는 순간에도 화려한 관복 속에 살을 파고드는 거친 고슴도치 가죽(헤어셔츠)을 몰래 입고, 매일 아침 자신의 육체를 채찍질하며 신을 잊지 않으려 피비린내 나는 고통을 스스로에게 주입했다.

 

절대 권력과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다시 법전을 쥔 모어는 젊은 나이에 하원 의원으로 당선되며 중앙 정계에 진출했다. 탐욕스러운 헨리 7세의 부당한 세금 징수에 정면으로 도전했다가 가문이 파멸할 위기를 겪기도 했으나, 헨리 7세가 숨을 거둔 후 젊고 총명한 군주 헨리 8세가 즉위하면서 화려하게 복귀했다.

 

헨리 8세는 모어의 천재적인 지성과 성품에 매료되어 그를 격하게 총애했다. 예고도 없이 그의 사택에 찾아와 어깨동무를 하며 친밀함을 과시할 정도였다. 그러나 모어는 절대 권력이라는 맹수의 본질을 꿰뚫고 있었다. 가문의 영광을 축하하는 사위에게 그는 "만약 프랑스의 성 한 채를 빼앗아 오는데 내 목 하나가 필요하다면, 폐하께서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내 목을 잘라 바꿀 사람"이라며 냉철하고 섬뜩한 통찰을 속삭였다. 그런 위태로움 속에서도 모어는 하원 의장 시절 왕에게 '의회 내 언론의 자유'를 청원하여 보장받는 등 민주적 초석을 다지며 정치가로서 최정점에 올랐다.

 

현실의 디스토피아 속에서 설계한 '유토피아'

 

1515년 외교 사절단으로 떠난 플랑드르에서 사기와 기만이 가득한 현실 정치에 환멸을 느낀 모어는 신비로운 탐험가 라파엘을 만나 미지의 섬 '유토피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사유재산이 없고, 모두가 평등하게 노동하며, 종교적 관용이 법으로 보장된 완벽한 이상향의 세계. 모어는 이를 바탕으로 1516년 불멸의 저작 《유토피아》를 출간하여 유럽 지식인 사회에 거대한 폭탄을 던졌다.

 

하지만 이 눈부신 저작은 지독한 사상적 모순의 비극을 품고 있었다. 책 속에서는 종교의 자유를 아름답게 노래했던 인문주의자 모어였으나, 루터의 종교개혁 폭풍이 불어닥치자 가톨릭 교회의 통일성을 지키기 위해 이단자들을 잔혹하게 색출해 화형대로 보내는 냉혹한 수호자로 돌변했다. 자신이 만든 이상향과 피비린내 나는 현실 정치의 괴리 속에서 그의 영혼은 서서히 찢어지고 있었다.

 

독이 든 성배, 대법관직과 비극의 시작

 

헨리 8세가 조강지처 캐서린 왕비와의 이혼을 추진하고 새로운 여인 앤 블린을 왕비로 맞이하려 하면서 잉글랜드는 거대한 폭풍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가톨릭 신앙과 법의 관점에서 왕의 이혼은 명백한 죄악이었기에 모어는 깊은 절망에 빠졌다. 이혼 과정을 지휘하던 울지 추기경이 숙청된 후, 모어는 최초의 평신도 출신 최고 대법관 자리에 오르게 된다. 그는 이 자리가 자신의 목을 부러뜨릴 '독이 든 성배'임을 직감했다.

 

왕이 로마 교황청과 결별하고 자신을 영국 교회의 수장으로 선언하는 '수장령'을 추진하자, 모어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가슴 통증을 핑계로 대법관직을 사임했다. 이는 절대 권력을 향한 가장 차가운 거절이었다. 사임 후 가산이 몰수되어 온 가족이 굶주림과 추위에 떠는 극심한 생활고를 겪었고, 아내마저 "당신의 잘난 신념이 밥을 먹여주냐"며 원망을 쏟아냈지만 모어는 침묵으로 신념을 지켰다.

 

창백한 침묵, 조작된 재판 그리고 마지막 눈물

 

헨리 8세의 왕위 계승법과 수장령 선서를 끝까지 거부한 모어는 결국 런던탑에 투옥되었다. 1년이 넘는 수감 생활 동안 뼈만 남은 몰골이 되고, 유일한 위안이었던 책과 종이마저 빼앗겼으나 그는 감옥 바닥의 석탄 조각을 주워 돌벽 위에 자신의 영혼과 양심을 새겨 넣었다. 법리적으로 '말하지 않는 침묵'은 반역죄가 될 수 없다는 테두리 안에서 저항했으나, 왕실은 그의 제자였던 리처드 리치를 매수해 허위 증언을 조작해 냈고, 법정은 단 15분 만에 그에게 참수형을 선고했다.

 

재판 후 도끼날이 자신을 향한 채 런던탑으로 돌아가던 길, 목숨보다 아꼈던 장녀 마거릿이 호위병들의 창날을 뚫고 달려와 그의 허리를 감싸 안고 오열했다. 신앙 앞에서는 엄격했던 대법관 모어였지만, 자식의 눈물 앞에서는 붉어진 눈시울로 "내 사랑하는 딸아, 슬퍼하지 말거라. 하늘나라에서 우리가 다시 만나 한바탕 웃을 그날을 기다리자"며 가슴 찢어지는 부성애의 피눈물을 삼켜야 했다.

 

토마스 모어의 비극적인 죽음은 유럽 전체에 엄청난 충격을 안겼다. 맹목적인 탐욕과 기만이 가득한 디스토피아의 현실 속에서 처참하게 짓밟히면서도, 끝내 자신의 목숨과도 바꿀 수 없는 단단한 양심을 증명해 낸 고독한 인간 토마스 모어. 도끼날 앞에서도 잃지 않았던 그의 찬란한 미소와 창백한 침묵은 500년이 지난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진정한 신념의 가치가 무엇인지 묵직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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