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종복의글로컬스토리]
우리는 스스로를 안전 선진국의 문턱에 선 나라라고 말한다. 대형 참사를 여러 번 겪으면서 재난안전법이 정비되었고,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면서 산업현장의 안전 기준도 크게 높아졌다. 공장과 건설현장, 다중이용시설에는 '안전관리 책임자'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런데 하루 수백만 명의 아이들이 머무는 곳, 학교는 여전히 그 흐름에서 한 걸음 비켜서 있다. 학교는 대한민국 안전체계의 마지막 사각지대다.
모두의 책임은 누구의 책임도 아니다
학교에서 사고가 나면 우리는 먼저 담임교사를 찾는다. 다음은 교장, 그다음은 교육청이다. 그러나 막상 "학교안전의 최종 책임자가 누구인가"라고 물으면 명쾌하게 답하는 사람이 드물다. 시설은 행정실이, 교육은 교사가, 보건은 보건교사가, 급식은 영양교사와 조리실무사가, 등하굣길은 지자체와 경찰이 나눠 맡는다. 칸막이마다 담당자는 있지만 전체를 꿰뚫어 보는 사람은 없다.
2025년 2월 대전의 한 초등학교에서 여덟 살 아이가 목숨을 잃은 사건은 이 구조의 허점을 가장 아프게 드러냈다. 학교 안, 그것도 교사에 의한 범행이었다는 사실 앞에서 우리 사회는 할 말을 잃었다. 늘봄교실 이후 귀가 동선, 교원의 정신건강 관리, 복직 심사 절차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제대로 작동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지 모른다. 문제는 개인의 일탈을 넘어, 위험 신호가 모이고 판단되는 '통합된 창구'가 학교에 없었다는 데 있다.
교사에게 떠넘겨진 안전
현장체험학습은 또 다른 단면을 보여준다. 2022년 강원도 체험학습 중 발생한 학생 사망 사고로 인솔 교사가 형사재판을 받고 유죄 판결까지 나오자, 전국의 교사들은 체험학습 자체를 꺼리게 되었다. 교사를 보호할 제도적 장치 없이 책임만 개인에게 지워지면, 결국 사라지는 것은 아이들의 배움의 기회다. 안전을 이유로 교육을 멈추는 것은 안전을 지키는 방법이 아니라 안전 관리를 포기하는 방식이다.
2023년 서이초 사건 이후 교권 문제가 사회적 의제로 떠올랐지만, 그 논의 역시 '교사의 마음의 안전'이라는 또 하나의 사각지대를 드러냈을 뿐 구조적 해법으로 충분히 이어지지 못했다. 학교안전은 학생만의 문제가 아니다. 교사, 조리실무사, 돌봄 인력까지 학교라는 공간에서 일하고 생활하는 모든 사람의 문제다. 급식실 조리 종사자들의 폐암 산재 인정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는 사실도 학교가 '일터로서의 안전'에서 얼마나 뒤처져 있는지를 말해준다.
세계는 학교를 어떻게 지키는가
글로벌한 시선으로 보면 방향은 비교적 분명하다. 일본은 2001년 오사카 이케다 초등학교 흉기 난입 사건 이후 학교안전을 국가 계획의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5년 단위의 '학교안전 추진계획'을 세우고, 학교마다 안전계획과 위기관리 매뉴얼을 의무화했으며, 지역 주민과 보호자가 참여하는 통학로 보호 체계를 만들었다. 한 번의 비극을 제도로 바꿔낸 것이다.
영국은 학교를 산업안전보건법의 적용을 받는 '일터'로 명확히 규정하고, 고용주인 지방정부나 학교법인에 위험성 평가와 관리 책임을 지운다. 체험학습 역시 사전 위험성 평가와 기관 차원의 승인 절차를 거치도록 해, 사고가 났을 때 책임이 교사 개인이 아니라 시스템에 먼저 묻도록 설계되어 있다. 핵심은 '사람을 처벌하는 안전'이 아니라 '구조가 책임지는 안전'이다.
로컬에서 시작하는 해법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부터 해야 할까.
첫째, 학교마다 안전을 총괄하는 전담 인력과 권한을 명확히 해야 한다. 교사의 업무에 '안전'을 하나 더 얹는 방식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교육청 단위의 안전 전문 인력을 학교 군별로 배치하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둘째, 체험학습과 방과후·늘봄 프로그램에 대해 표준화된 위험성 평가와 기관 책임 원칙을 세워야 한다. 교사가 매뉴얼을 지켰다면 법적 책임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어야 교육이 멈추지 않는다.
셋째, 학교안전을 지역사회와 함께 설계해야 한다. 등하굣길, 돌봄 이후 귀가, 학교 주변 유해환경은 학교 담장 밖의 문제다. 지자체, 경찰, 소방, 보호자, 지역 주민이 하나의 안전 네트워크로 묶일 때 비로소 사각지대가 줄어든다. 글로벌한 원칙을 로컬의 현실에 맞게 뿌리내리는 것, 그것이 이 칼럼이 늘 말해온 '글로컬'의 의미이기도 하다.
넷째, 교직원의 정신건강과 노동안전을 학교안전의 정식 영역으로 포함해야 한다. 지친 어른이 아이를 안전하게 지킬 수는 없다.
마지막 사각지대를 지우며
안전은 비용이 아니라 신뢰다. 부모가 아침에 아이를 학교에 보내며 아무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 교사가 아이들을 데리고 숲으로 박물관으로 마음껏 나갈 수 있는 사회가 진짜 안전 선진국이다. 우리는 이미 많은 희생을 치르고 나서야 산업현장과 공공시설의 안전을 바꿔왔다. 학교만큼은 또 다른 비극을 기다린 뒤에 바뀌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 안전의 마지막 사각지대, 이제는 불을 켜야 할 때다.
선종복 (GK뉴스온 칼럼니스트)
선종복(서울교육삼락회장, 前 서울북부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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