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초 쇼츠가 나라를 흔든다”…말은 박제되고, 피드는 벽이 됐다
선우진 기자
말 한마디가 선거판을 뒤집고, 15초짜리 영상 하나가 여론을 갈라놓는 시대다. 대한민국은 지금 '혀'와 '알고리즘'이라는 두 개의 단층선 위에서 흔들리고 있다.
■ 생중계되는 혀, 박제되는 실언
설화(舌禍)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 파괴력은 차원이 달라졌다. 올해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인의 일거수일투족이 유튜브 쇼츠로 생중계되면서, 무심코 던진 말이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영상으로 남아 커뮤니티에 순식간에 퍼지는 장면이 반복됐다. 결국 6·3 지방선거는 고소·고발과 네거티브 공방에 각종 설화 논란까지 겹치면서 유권자들의 피로감을 키웠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정 진영만의 문제도 아니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실언은 터져 나왔고, 그때마다 사과와 해명, 역공이 뒤따랐다. 문제는 실언 그 자체보다 그 이후다. 맥락은 잘려 나가고, 가장 자극적인 몇 초만 남아 진영의 '탄약'이 된다.
■ 알고리즘, 보고 싶은 것만 보여주는 거울
그 탄약을 실어 나르는 것이 알고리즘이다. 방송통신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영상을 볼 때 추천된 영상을 고르는 비중이 61%에 달했다. 우리가 '선택'한다고 믿는 정보의 절반 이상이 사실은 기계가 골라준 것이라는 뜻이다. 게다가 한국은 유튜브를 통한 뉴스 이용률이 44%로, 조사 대상 46개국 평균보다 15%포인트나 높은 나라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추천 알고리즘이 상업적 목적상 이용자를 더 오래 붙잡아 두도록 설계돼 있어, 반대 의견에 덜 노출되고 비판적 사고의 기회를 잃게 만든다고 지적하며 결국 정치적 확신의 극단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 결과는 우리 밥상에서 확인된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다툼을 피하려 정치 뉴스를 끄고 대화를 삼가면서, 친구나 연인 사이에서도 정치가 금기어가 됐다. 여기에 생성형 AI라는 새 변수까지 등장했다. AI의 미묘한 아첨과 편향된 공감이 사람들 사이의 갈등을 부추길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이달 국제학술지 Scientific Reports에 실렸다.
■ 혀와 알고리즘의 '위험한 동맹'
설화와 알고리즘은 따로 노는 문제가 아니다. 자극적인 말이 클릭을 부르고, 클릭은 알고리즘의 먹이가 되며, 알고리즘은 더 자극적인 말을 요구한다. 정치인은 '센 발언'으로 지지층을 결집하고, 유튜버는 그것을 편집해 수익을 올리고, 시민은 각자의 방에 갇혀 상대 진영을 '괴물'로 인식하게 된다. 신중한 말은 묻히고 막말은 확산되는 구조, 이것이 지금 대한민국을 흔드는 진짜 엔진이다.
해법은 어디에 있나
첫째, 정치의 언어 책임을 제도화해야 한다.
실언 뒤 형식적 사과로 끝나는 관행을 넘어, 각 정당이 윤리 기준을 명확히 하고 반복적 혐오·비하 발언에는 공천 불이익 등 실질적 책임을 지워야 한다. 말의 무게를 되살리는 것은 정치권 스스로의 몫이다.
둘째, 알고리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
다만 방식은 신중해야 한다. 입법조사처도 해외 사업자만 겨냥한 입법은 통상 마찰 소지가 있어 국내외 사업자를 아우르는 방안이 필요하며, 이용자가 다양한 정보를 자유롭게 탐색할 수 있도록 외부의 정보 통제 역시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규제가 검열로 변질돼선 안 된다는 뜻이다. 추천 기준 공개, 이용자가 추천을 끄거나 조정할 수 있는 선택권 보장 등이 현실적 출발점이다.
셋째,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국가 과제로 격상해야 한다.
학계에서도 이용자가 확증편향에 빠지지 않도록 알고리즘 작동 방식을 이해시키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학교뿐 아니라 정치 콘텐츠 소비가 가장 많은 중장년층까지 아우르는 평생교육이 필요하다.
넷째, 언론의 자성도 빼놓을 수 없다.
실언을 '받아쓰기'하며 조회수 경쟁에 뛰어든 언론 역시 이 악순환의 한 축이다. 자극보다 맥락을, 속도보다 검증을 앞세우는 것이 언론 본연의 역할이다.
물론 반론도 있다. 유튜브 알고리즘 자체가 이용자를 더 극단적인 콘텐츠로 이끄는지에 대해서는 학계에서도 아직 의견이 갈린다. 알고리즘 탓만 하다 보면 정치 구조와 시민 개개인의 책임이 가려질 수 있다는 지적도 귀담아들어야 한다. 기술을 악마화하기보다, 기술과 정치와 시민이 함께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 이 글의 결론이다.
■ 맺으며
입은 화(禍)의 문이라 했다. 오늘날 그 문은 알고리즘이라는 확성기와 연결돼 있다. 한 사람의 실언이 수백만 명의 분노가 되고, 그 분노가 다시 정치를 극단으로 몰아간다. 대한민국을 흔드는 것은 외부의 적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 내뱉는 말과 무심코 넘기는 피드일지 모른다.
이제 필요한 것은 말의 품격, 정보의 다양성, 그리고 서로의 방문을 두드릴 용기다. 흔들림을 멈추는 힘은 결국 우리 안에 있다.
선우진 기자 / GK뉴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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