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에 전국 곳곳에 정원박람회를 자주 접하게 된다. 가을은 더 풍성한 색과 열매로 세상을 물들이니, 정원 풍경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대한민국의 도시 거주자들에게 ‘정원’이라는 단어는 친밀감이 적다. 적어도 50대 이상의 세대는 대문이 있고 화단이 있는 집에서 자란 기억이 있겠지만, 40대 이하의 세대에게는 대부분 공동주택이 주거 공간의 전부다. 아파트 단지 내, 하천변, 도심 공원 등의 잘 가꾸어진 조경이 더욱 절실해진 이유이기도 하다.
나 역시 얼마 전까지는 22층 아파트에 살았다. 삼면으로 햇살이 쏟아지고, 거실 창을 열면 호수가 커텐처럼 드리운 전망 좋은 곳이었다. 하지만 흙내음이나 나뭇잎의 싱그러움은 결코 닿지 못하는 까마득한 높이에서 모든 물상은 그저 내 발아래 낮게 엎드린 미니어처 세상에 불과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은퇴를 하면 꼭 마당이 있고 대문이 있는 집에 살아야지’ 하고 별렀다. 은퇴와 함께 작은 화단이 있고 대문이 있는 집으로 옮겼다. 이제는 엘리베이터 대신 대문을 밀고 화단을 지나는 사이 꽃과 나무그림자가 하루의 고단함을 툭툭 떨구어내며 환대한다.
골똘히 일에 묻혀 어깨가 굳어올 즈음 마당에 나서면, 세상은 전혀 다른 안식을 건넨다. 작가 앨리스 사볼드가 정원은 다른 세계로의 문이라고 했다. 밤낮으로 속을 끓이던 일들을 덮고 댓돌을 내려서는 순간, 새벽 달빛과 별빛이 달려와 모든 걱정을 씻어내린다. 저들은 세상의 진리에 저토록 준엄하게 따르며 거대한 우주를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내 한걸음과 숨소리에 생물들은 죽은 듯 숨을 멈춘다. 몸을 낮추어 들여다보면 꼬물거리는 작은 생명들의 서로 경쟁하고 상생하는 격렬한 풀무질이 넋을 잃게 한다.
집을 향한 저마다의 선택 기준이 있겠지만, 이제는 높은 층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집보다, 댓돌 아래에 나를 낮게 내려놓는 작은 마당 집이 좋다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모든 인간은 자연에 끌리는 성향이 있다고 하였다. 인간도 자연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정원을 통해 삶의 위안을 얻고 자연과 교감하려는 태도는 동서양을 막론한 오랜 습성이기도 하다. 조선 사대부들의 정원은 경계가 없는 ‘확장과 비움’의 미학을 담고 있었다. 담장 안에 인공적인 자연을 가두지 않고, 담장 너머의 먼 산과 들판, 흐르는 물까지 내 정원의 일부로 끌어들이는 ‘차경(借景)’의 철학이 그 중심에 있다.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잠시 빌려 즐기는 이 겸손한 태도는 자연 순응 사상의 정점이다. 선조들은 강희안의 《양화소록》처럼 식물을 기르며 우주의 이치를 깨달았고, 매화나 소나무를 보며 자신의 지조를 성찰했다. 비록 넓은 마당을 갖지 못하더라도 마음속으로 꿈꾸는 이상향의 정원을 글과 그림으로 즐기던 조선 후기 ‘의원(意園)’ 역시, 정원을 현실의 번잡함을 벗어나는 고매한 정신적 은신처로 여겼음을 보여준다.
도심의 조촐한 화단은 준수한 산의 자태를 끌어들이지 못한다. 하지만 건사하는 자의 역량만큼 공들여 피워낸 장미 몇 송이, 수국 한 다발로 마음의 소음을 지우는 시간은 고산수 명상이라 칭할만하다.
집이란 무엇인가.
집은 자산을 증식하는 콘크리트 요술상자일까, 아니면 지친 심신을 재충전하는 안식처일까. 높이 올라가 세상을 발아래 두는 삶보다, 땅에 발을 딛고 계절의 변화를 생생하게 느끼는 삶을 선택해 보면 어떨까. 높은 집에서는 세상을 내려다볼 수 있지만, 낮은 집에서는 자연과 온전히 호흡할 수 있다.
정원박람회를 찾는 이들은 각자의 공간에 화분을 들이고 이런저런 식물들을 키워보는 계기를 맞이할 것이다. 잠시라도 고층 아파트의 가격 경쟁을 잊고 국화향에 취해보길 권한다. 삶의 전장을 누비는 청장년층이야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은퇴 후에는 정원이 주는 기쁨을 느끼며 사람과 집의 온기에 대한 즐거운 고민을 안고 돌아가기를 기대한다.
기성세대가 아파트 단지에서 한 걸음 비켜서는 변화는, 젊은 세대에게 주거의 숨통을 틔워주는 상생의 통로가 될 수 있다. 평생 더 고층아파트, 더 신축아파트를 향해 치열하게 달려왔다면, 이제는 땅에 발을 딛고 자연과 호흡해야 할 때다. 아파트 평수와 집값을 올리는 데 평생을 바쳤다면, 이제는 정원을 가꾸며 삶의 가치를 높일 차례다. 마침 10월 16일부터 열리는 경기정원문화박람회는 이렇듯 ‘소유’에서 ‘향유’로 나아가는 주거 문화의 패러다임 전환을 직접 경험하고 음미할 수 있는 최적의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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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향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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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 서울글로컬교육연구원 대표/ 교육부 정책자문위원/ 이민통합 박사/ 대한민국 초등교원으로 41년을 봉직하고 황조근정훈장을 받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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