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자리 앉자니
72세로 부끄럽고저 자리, 유료 승객 자리
빼앗나 싶고
곧추서니 편타
_안정선
이 디카시는 ‘노년의 자리감각’을 아주 짧게 또렷하게 잡아낸 작품입니다.
제목과 사진의 의미
제목 ‘서서’는 실제 행위(서 있는 자세)와 삶의 태도(곧추 서기)를 동시에 암시합니다.
배경이 풀밭 속 작은 풀꽃이라는 점에서, 화자는 사회적으로는 미미한 존재처럼 느끼지만 여전히 살아 있는 생명으로 서 있다는 인상을 줍니다.
1행·2행: 나이 듦의 쑥스러움
“이 자리 앉자니 / 72세로 부끄럽고”
에서 ‘이 자리’는 노약자석, 혹은 양보 받아야 할 자리로 읽히며, 나이를 내세워 특권을 누리는 것에 대한 민망함이 드러납니다.
‘72세’라는 구체적인 나이 표기는 자기 연민 대신 담담한 자기 인식으로, 노년의 정체성을 사실적으로 드러내는 힘이 있습니다.
3행: 타인의 권리 의식
“저 자리, 유료 승객 자리 / 빼앗나 싶고”
에서 화자는 항공기나 교통수단의 일반석을 떠올리며, 자신이 앉으면 돈을 내고 탄 ‘유료 승객’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 같다는 죄책감을 느낍니다.
‘이 자리’와 ‘저 자리’의 대비는, 보호받아야 할 노인과 비용을 지불한 승객이라는 두 사회적 위치 사이에서 화자가 스스로를 어디에도 온전히 두지 못하는 불편한 심리를 잘 보여 줍니다.
마지막 행: 압축된 통증과 각오
“곧추서니 편타”
한 행이 이 디카시의 백미입니다.
‘편타’는 채찍질하듯 목이 확 젖혀지는 외상(whiplash injury)을 뜻하는데, 오랜 시간 서 있는 노인의 목과 허리에 오는 통증이 단번에 환기됩니다.
동시에 ‘곧추 서기’는 양심을 따라 남의 자리를 침범하지 않으려는 도덕적 선택으로, 육체적 고통과 윤리적 결단이 한 단어에 포개지며 강한 여운을 남깁니다.
종합 평
사진 속 여린 풀대 한 줄기와, ‘앉지도 못하고 서서 버티는’ 72세의 몸과 마음이 5행 이내에서 절묘하게 결합된, 디카시 형식에 충실한 작품입니다.
다만 ‘유료 승객 자리’라는 표현이 다소 설명적으로 느껴질 수 있어, 이미지로 더 우회해도 좋겠지만, 현실감과 동시대성을 살리는 장점도 있어 현재 버전 또한 충분히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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