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K수요칼럼]
글 세종사이버대학교 국방융합학과 김원호교수
며칠 전 4차 산업에 대한 강의를 마치고 강의실을 나오려고 하는데 한 학생이 머뭇거리며 다가왔다. “교수님, 양자컴퓨터가 상용화되고 인공지능이 지금보다 더 똑똑해지면, 제가 밤새워 공부하는 전공 지식은 결국 쓸모없어지는 것 아닐까요?”
학생의 태블릿에는 양자컴퓨터가 슈퍼컴퓨터로 수천 년 걸릴 문제를 순식간에 해결한다는 기사가 아롱이 박혀있었다. 새로운 기술을 바라보는 학생의 얼굴에는 기대보다 두려움이 짙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자신의 자리가 좁아질 것이라는 불안이었다. 우리는 언제부터 기술의 진보를 인간의 쓸모가 사라지는 과정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을까.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세상은 기존의 지식과 직업이 곧 사라질 것처럼 호들갑을 떤다. 증기기관이 등장했을 때도, 컴퓨터와 인터넷이 보급됐을 때도 비슷했다. 인공지능과 양자컴퓨터를 둘러싼 오늘의 공포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그러나 양자컴퓨터는 모든 문제를 기존 컴퓨터보다 빠르게 해결하는 만능 기계가 아니다. 양자적 특성을 활용할 수 있는 특정 계산에서 강점을 가질 뿐이다. 외부 환경의 작은 변화에도 오류가 발생하기 쉬워 이를 감지하고 수정하려면 기존 디지털 컴퓨터의 도움이 필요하다. 미래의 컴퓨팅은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완전히 밀어내는 구조보다, 양자컴퓨터와 인공지능, 반도체와 클라우드가 서로의 한계를 보완하는 방식에 가까울 가능성이 크다.
기술의 역사는 대체의 역사이면서 동시에 협업의 역사였다. 계산기가 등장했다고 수학이 사라지지 않았고, 검색 엔진이 생겼다고 지식의 가치가 없어지지도 않았다. 오히려 쉽게 답을 찾을 수 있게 되면서 어떤 자료를 믿고, 어떻게 해석하며, 어디에 적용할 것인지 판단하는 능력이 더 중요해졌다.
인공지능 시대에도 마찬가지다. 기계는 방대한 자료를 분석해 가장 효율적인 경로를 제시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경로가 누구에게 유리한지, 누가 소외되는지, 효율을 위해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지는 스스로 판단하지 못한다.
의료 인공지능이 환자의 데이터를 분석해 치료 가능성을 제시하더라도, 환자가 어떤 삶을 원하는지 듣고 치료의 한계를 설명하는 일은 사람의 몫이다. 스마트팜의 센서가 온도와 습도를 정확히 측정하더라도, 작물의 상태와 시장의 흐름을 종합해 최종 결정을 내리는 데에는 농부의 경험과 책임이 필요하다.
물론 인간의 직관을 지나치게 낭만화해서도 안 된다. 경험은 때로 편견이 되고, 전문가의 판단도 틀릴 수 있다. 그렇기에 필요한 것은 인간과 기계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일이 아니라, 서로의 오류를 점검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기계의 계산은 인간의 독선을 교정하고, 인간의 질문은 기계의 맹목적인 효율을 견제해야 한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우리가 기술을 대하는 태도다. 인공지능이 써준 글을 그대로 제출하고, 검색 결과의 첫 문장을 정답으로 받아들이며, 알고리즘이 추천한 길을 자신의 선택이라고 믿는 순간 인간은 스스로를 기계의 부속품으로 만든다.
대학 교육도 달라져야 한다. 이미 존재하는 정답을 얼마나 정확히 암기했는지만 평가하는 교육은 정답을 더 빠르게 생산하는 기계 앞에서 힘을 잃을 수밖에 없다. 이제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지식을 포기하는 일이 아니다. 지식을 토대로 낯선 문제를 정의하고, 여러 답 사이의 이해관계를 살피며, 결과에 책임지는 힘을 기르는 일이다.
필자는 그 학생에게 전공 지식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전공 지식을 사용하는 방식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기계보다 더 많은 정보를 기억하려 애쓰는 사람은 언젠가 기계에 질 수 있다. 그러나 기계가 내놓은 답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묻는 사람, 계산되지 않은 고통을 발견하는 사람, 더 나은 질문을 만드는 사람은 쉽게 대체되지 않는다.
정답이 귀하던 시대에는 많이 아는 사람이 힘을 가졌다. 그러나 기계가 수많은 답을 순식간에 토해내는 시대에는 무엇을 물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 길을 연다.
우리는 기술보다 빠르게 계산할 필요는 없다. 다만 기술이 가리키는 길이 정말 인간이 가야 할 길인지 멈춰 물을 수 있어야 한다. 정답이 넘쳐나는 시대, 인간에게 남은 가장 중요한 능력은 어쩌면 정답을 소유하는 일이 아니라 끝내 질문을 포기하지 않는 일인지도 모른다.
세종사이버대학교 국방융합학과 김원호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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