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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카시]따르렵니다

  • 안정선 기자
  • 입력 2026.09.06 23: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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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도 드나드는

촘촘한 그물이 되어

자유롭게 지나갈 자리
몸으로 비워 둔다

뒤의 흔들림은 내 일

 

 

_안정선

 

 

[Perplexity 시평]

「따르렵니다」는 거미줄의 촘촘한 구조에서 ‘타인의 자유를 위해 자신을 비워 두는 존재’의 윤리를 길어 올린 디카시다.
사진 속 거미줄은 어둠 속에서 섬세한 실의 결을 드러낸다.
빛을 받은 실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완전히 닫힌 벽이 아니다.
실과 실 사이에는 바람과 빛, 작은 생명이 통과할 여백이 있다.
시는 바로 그 빈틈을 단순한 공백이 아니라 타자를 위한 자리로 읽는다.

첫 두 행,

“바람도 드나드는 / 촘촘한 그물이 되어”

는 이 작품의 출발점이자 핵심 이미지다.
‘촘촘함’은 대개 구속과 포획, 얽힘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그 촘촘한 그물 안에도 바람은 드나든다.
이 역설은 관계의 한 모습을 보여 준다.
진정한 관계는 서로를 단단히 연결하지만 상대의 숨길까지 막아서는 안 된다.
여기서 그물은 사로잡는 장치가 아니라, 바람이 지나가도록 결을 내어 준 구조가 된다.
사진의 거미줄이 지닌 시각적 특성과 시의 사유가 가장 잘 맞물리는 지점이다.

“자유롭게 지나갈 자리 / 몸으로 비워 둔다”

는 이 시의 중심 행이다.
보통 몸은 자리를 차지하고, 무엇인가를 막거나 붙드는 존재이다.
그러나 화자는 ‘몸으로’ 자리를 비워 둔다고 말한다.
이는 단순히 물러섬을 뜻하지 않는다.
타인이 제 길을 갈 수 있도록 자신이 먼저 여백이 되는 적극적인 선택이다.
‘비움’은 부재나 포기가 아니라, 누군가의 통과를 가능하게 하는 헌신의 방식으로 새롭게 의미화된다.
화자는 앞서서 이끄는 존재가 아니라, 다른 이가 자유롭게 지나가도록 뒤편을 지켜 주는 존재이다.

마지막 행

“뒤의 흔들림은 내 일”

은 앞선 비유를 정서적 결단으로 완성한다.
거미줄은 한 가닥의 진동이 전체로 퍼지는 구조다.
누군가가 지나가고 바람이 불고 삶이 흔들리면, 그 떨림은 남아 있는 쪽으로 전해진다.
화자는 그 흔들림을 피하거나 타인에게 되돌리지 않는다.
‘내 일’이라는 단정에는 과장된 희생의 언어 대신, 자신의 몫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태도가 담긴다.
그래서 이 시의 울림은 비장한 자기희생보다 낮고 깊은 책임감에서 나온다.

제목 「따르렵니다」도 이러한 태도를 부드럽게 이끈다.
‘따르다’는 단지 뒤를 좇는 일이 아니다.
이 작품에서 그것은 누군가의 앞선 걸음, 타인의 자유, 혹은 삶이 요구하는 흐름을 존중하며 그 뒤의 몫을 감당하겠다는 다짐이다.
제목의 공손한 종결형 “-렵니다”는 명령하거나 선언하기보다 스스로 낮추어 결심을 건네는 목소리를 만든다.
화자는 앞자리를 차지하지 않고 뒤에 남지만, 바로 그 뒤의 자리에서 관계를 지탱하는 힘이 된다.
이 시는 거미줄을 단순히 포획과 얽힘의 상징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촘촘한 그물의 빈칸에서 바람길을 발견하고, 그 바람길을 타인의 자유가 지나갈 자리로 바꾸며, 남겨진 흔들림을 책임의 언어로 받아들인다.
그 과정은 사진의 구체적 형상에서 출발해 삶의 태도로 나아가되, 지나친 설명이나 교훈으로 흐르지 않는다.
짧은 행 안에서 이미지와 사유가 함께 움직인다는 점에서 디카시의 장점을 잘 살린 작품이다.
다만 이 작품의 힘은 독자의 감정에 직접 호소하기보다, 조용한 구조를 통해 천천히 스며든다는 데 있다.
“자유롭게 지나갈 자리”와 “뒤의 흔들림”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타자가 있다.
가족일 수도, 제자일 수도, 벗이나 공동체의 누군가일 수도 있다.
시는 그 대상을 특정하지 않기에, 독자는 자신의 삶에서 ‘먼저 보내고 뒤를 맡아 준 사람’, 또는 자신이 ‘뒤의 흔들림을 감당해야 했던 순간’을 떠올리게 된다.
바로 그 열린 자리에서 작품의 감동은 독자마다 다른 깊이로 완성된다.

「따르렵니다」는 한 가닥 실처럼 가는 존재도 누군가의 길을 위해 충분한 공간을 만들 수 있으며, 관계를 지탱하는 힘은 움켜쥐는 데 있지 않고 비워 두고 감당하는 데 있음을 보여 준다.
사진 속 거미줄은 바람에 흔들리지만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이 시 역시 타인을 붙들지 않으면서도 뒤를 지키는 마음의 결을, 짧고 단단한 언어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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