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도 드나드는
촘촘한 그물이 되어자유롭게 지나갈 자리
몸으로 비워 둔다
뒤의 흔들림은 내 일
_안정선
[Perplexity 시평]
「따르렵니다」는 거미줄의 촘촘한 구조에서 ‘타인의 자유를 위해 자신을 비워 두는 존재’의 윤리를 길어 올린 디카시다.
사진 속 거미줄은 어둠 속에서 섬세한 실의 결을 드러낸다.
빛을 받은 실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완전히 닫힌 벽이 아니다.
실과 실 사이에는 바람과 빛, 작은 생명이 통과할 여백이 있다.
시는 바로 그 빈틈을 단순한 공백이 아니라 타자를 위한 자리로 읽는다.
첫 두 행,
“바람도 드나드는 / 촘촘한 그물이 되어”
는 이 작품의 출발점이자 핵심 이미지다.
‘촘촘함’은 대개 구속과 포획, 얽힘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그 촘촘한 그물 안에도 바람은 드나든다.
이 역설은 관계의 한 모습을 보여 준다.
진정한 관계는 서로를 단단히 연결하지만 상대의 숨길까지 막아서는 안 된다.
여기서 그물은 사로잡는 장치가 아니라, 바람이 지나가도록 결을 내어 준 구조가 된다.
사진의 거미줄이 지닌 시각적 특성과 시의 사유가 가장 잘 맞물리는 지점이다.
“자유롭게 지나갈 자리 / 몸으로 비워 둔다”
는 이 시의 중심 행이다.
보통 몸은 자리를 차지하고, 무엇인가를 막거나 붙드는 존재이다.
그러나 화자는 ‘몸으로’ 자리를 비워 둔다고 말한다.
이는 단순히 물러섬을 뜻하지 않는다.
타인이 제 길을 갈 수 있도록 자신이 먼저 여백이 되는 적극적인 선택이다.
‘비움’은 부재나 포기가 아니라, 누군가의 통과를 가능하게 하는 헌신의 방식으로 새롭게 의미화된다.
화자는 앞서서 이끄는 존재가 아니라, 다른 이가 자유롭게 지나가도록 뒤편을 지켜 주는 존재이다.
마지막 행
“뒤의 흔들림은 내 일”
은 앞선 비유를 정서적 결단으로 완성한다.
거미줄은 한 가닥의 진동이 전체로 퍼지는 구조다.
누군가가 지나가고 바람이 불고 삶이 흔들리면, 그 떨림은 남아 있는 쪽으로 전해진다.
화자는 그 흔들림을 피하거나 타인에게 되돌리지 않는다.
‘내 일’이라는 단정에는 과장된 희생의 언어 대신, 자신의 몫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태도가 담긴다.
그래서 이 시의 울림은 비장한 자기희생보다 낮고 깊은 책임감에서 나온다.
제목 「따르렵니다」도 이러한 태도를 부드럽게 이끈다.
‘따르다’는 단지 뒤를 좇는 일이 아니다.
이 작품에서 그것은 누군가의 앞선 걸음, 타인의 자유, 혹은 삶이 요구하는 흐름을 존중하며 그 뒤의 몫을 감당하겠다는 다짐이다.
제목의 공손한 종결형 “-렵니다”는 명령하거나 선언하기보다 스스로 낮추어 결심을 건네는 목소리를 만든다.
화자는 앞자리를 차지하지 않고 뒤에 남지만, 바로 그 뒤의 자리에서 관계를 지탱하는 힘이 된다.
이 시는 거미줄을 단순히 포획과 얽힘의 상징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촘촘한 그물의 빈칸에서 바람길을 발견하고, 그 바람길을 타인의 자유가 지나갈 자리로 바꾸며, 남겨진 흔들림을 책임의 언어로 받아들인다.
그 과정은 사진의 구체적 형상에서 출발해 삶의 태도로 나아가되, 지나친 설명이나 교훈으로 흐르지 않는다.
짧은 행 안에서 이미지와 사유가 함께 움직인다는 점에서 디카시의 장점을 잘 살린 작품이다.
다만 이 작품의 힘은 독자의 감정에 직접 호소하기보다, 조용한 구조를 통해 천천히 스며든다는 데 있다.
“자유롭게 지나갈 자리”와 “뒤의 흔들림”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타자가 있다.
가족일 수도, 제자일 수도, 벗이나 공동체의 누군가일 수도 있다.
시는 그 대상을 특정하지 않기에, 독자는 자신의 삶에서 ‘먼저 보내고 뒤를 맡아 준 사람’, 또는 자신이 ‘뒤의 흔들림을 감당해야 했던 순간’을 떠올리게 된다.
바로 그 열린 자리에서 작품의 감동은 독자마다 다른 깊이로 완성된다.
「따르렵니다」는 한 가닥 실처럼 가는 존재도 누군가의 길을 위해 충분한 공간을 만들 수 있으며, 관계를 지탱하는 힘은 움켜쥐는 데 있지 않고 비워 두고 감당하는 데 있음을 보여 준다.
사진 속 거미줄은 바람에 흔들리지만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이 시 역시 타인을 붙들지 않으면서도 뒤를 지키는 마음의 결을, 짧고 단단한 언어로 남긴다.
ⓒ GK뉴스온 & gknewson.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
BEST 뉴스
-
[황지영칼럼]"내가 할게요"
마포구의 한 초등학교. 당시 학교 주변은 유행에 가장 민감하고 현란한 네온사인을 뽐내는 상가가 즐비했으며, 최신 패션을 선도하는 젊은이들로 넘쳐나던 한국에서 가장 핫한 거리 중 하나였다. 그래서일까? 고학년 여자아이들은 짧은 반바지에 긴 윗도리로 하의실종을 연출하고 연... -
[선종복의 글로컬스토리]“대한민국은 왜 잠시도 조용할 날이 없을까?” … 소음 뒤에 숨겨진 진실
선종복 | 칼럼니스트 / GK뉴스온 대한민국은 오늘도 시끄럽다. 아침에 눈을 뜨면 미디어와 커뮤니티는 정쟁과 갈등, 극단적 대립의 목소리로 넘쳐난다. 현직 대통령과 국정 운영을 둘러싼 치열한 공방부터 세대·이념·계층 간의 불협화음까지, 과연 대한민국은 왜 이토록 잠시도 조용할 날이 없을까? &... -
[GK시론]舌禍! 알고리즘! 대한민국은 흔들리고 있다, 해법은?
선우진 기자 말 한마디가 선거판을 뒤집고, 15초짜리 영상 하나가 여론을 갈라놓는 시대다. 대한민국은 지금 '혀'와 '알고리즘'이라는 두 개의 단층선 위에서 흔들리고 있다. ■ 생중계되는 혀, 박제되는 실언 설화(舌禍)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 파괴력은 차원이 달라... -
[선종복의 글로컬스토리]스펙을 넘어 인성으로, ‘협력하는 괴짜’가 미래를 만든다
AI와 인공지능이 삶의 모든 영역에 깊숙이 침투한 대변혁의 시대, 교육과 사회생활의 패러다임이 근본부터 흔들리고 있다. 과거에는 주어진 정답을 빠르게 맞히고 차곡차곡 스펙을 쌓아 올린 ‘모범생’이 인재의 표준이었다. 하지만 이미 존재하는 정답을 가장 빠르게 찾아내는 역할은 이제 AI의 몫이 되... -
[선종복의 글로컬스토리]저출생 시대, 학교는 왜 더 위험해지는가
올해 서울의 전체 학생 수가 사상 처음으로 80만 명 아래로 떨어졌다. 서울시교육청이 발표한 2026학년도 학급편성 결과에 따르면 서울 2092개 학교의 전체 학생 수는 78만2104명으로 지난해보다 2만8304명 줄었다. 전국으로 눈을 돌리면 상황은 더 뚜렷하다. 초·중·고교 전체 ... -
[선종복의 글로컬스토리]학교폭력·안전사고, 공제제도가 답할 차례
지난해 전국 학교에서 발생한 안전사고가 22만 건을 넘어섰다. 지난해 유·초·중·고와 특수·기타학교에서 발생한 안전사고는 총 22만136건으로 집계됐으며, 이는 전년보다 4%, 8486건 늘어난 규모다. 더 무거운 것은 사망으로 이어진 사고다. 사망으로 유족급여가 지급된 건...
전체댓글 0
NEWS TOP 5
추천뉴스
-
아일릿 ‘Almond Chocolate’, 日서 또 역주행 인기 돌풍!
- 오리콘·애플뮤직 등 주간 랭킹서 순위 상승 지속…어느새 차트 최상위권 넘봐 - 시간 지날수록 순위... -
에스파 ‘Whiplash’ 영어 버전, 오늘(27일) 오후 1시 공개
‘빌보드 위민 인 뮤직’서 무대 첫 선! 에스파 X 스티브 아오키 조합도 기대UP 에스파(aespa, 에스엠... -
‘솔로 데뷔 D-DAY’ NCT 마크, “‘The Firstfruit’는 제 인생을 바탕으로 만든 앨범” [일문일답]
“타이틀곡 ‘1999’, 포부와 1999년 콘셉트가 재미있는 곡… 가사에 타이틀로 확신” “진정성 있는 음... -
알리, 데뷔 20주년 광주 콘서트 '용진' 성료 "신곡 깜짝 선공개"
가수 알리(Ali)의 데뷔 20주년 기념 광주 콘서트가 성황리에 종료됐다. 알리는 지난 12일 광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