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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칼럼]윤향옥의 수요칼럼, 동상(statue)의 언어, 우상(idol)을 넘어 영원을 묻다

  • 박주은 기자
  • 입력 2026.01.06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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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향옥의 수요칼럼]

 

 동상(statue)의 언어, 우상(idol)을 넘어 영원을 묻다

 

2026년 새해, AI가 구현한 적토마가 하늘을 난다. 삼국지 속 전설의 말은 이제 중국의 만리장성과 부산의 광안리 상공을 가로지르며 대중 앞에 등장한다. 적토마는 더 이상 기록 속 존재가 아니라, 시대가 호출한 아이돌(Idol)이 되었다. 기술이 불러낸 이 상징 앞에서 우리는 오래된 질문과 마주한다.

 

동상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동상은 인간의 가장 오래된 염원 중 하나인 영원성(永遠性)을 향한 구체적인 시도이다. 쉽게 사라지지 않는 단단한 돌과 청동으로 빚어진 형상은, 제작된 순간부터 시간의 파도에 맞서려는 의지를 갖는다. 동상은 역사적 인물이나 중요한 사건, 추앙받는 이념 등을 후대에 길이 전하기 위해 세워진다. 동상은 기억을 붙잡고, 가치를 고정하며, 한 시대가 존중한 인물과 이념을 공간 위에 세운다. 그렇게 동상은 기억을 넘어 우상이 된다. 우상은 더 이상 묻지 않는다. 따르라고 말할 뿐이다.

 

지난 가을 다녀온 이집트 카이로의 거리에는 수많은 동상이 서 있다. 전쟁 영웅 압델 모네임 리야드 장군, 민족주의 지도자 오마르 마크람, 이집트 현대 경제의 아버지 탈라트 하브 파샤까지. 흥미로운 점은, 그 어떤 동상도 신을 향한 미나레트보다 높지 않다는 사실이다. 사람은 기려지되, 신을 넘어서지는 않는 명확한 구분이다. 그러나 동상은 침묵 속에서 시민에게 끝없이 속삭인다.
나처럼 살면, 당신도 추앙받을 수 있다.”
그러므로 동상은 기억이자 동시에 권력이다.

 

동상은 위용과 달리 풍요를 보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동상 아래의 현실은 늘 장엄하지 않다. 인구 2천만 명이 넘는 거대 도시 카이로는 혼탁한 나일강과 먼지 낀 하늘 아래에서 숨 가쁘게 움직인다. 시장에서는 아기를 안은 젊은 엄마들이 “one dollar”를 외친다. 관광객의 발걸음 뒤로 또 다른 손이 내밀어진다. 10미터에 달하는 람세스 2세의 거대한 석상조차, 이 삶의 무게 앞에서는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다.

 

잠깐 카이로를 스케치해 보자. 카이로는 숫자만으로도 압도적인 도시다. 중심부 인구만 950만 명, 광역 도시권까지 합치면 약 2,300만 명이 살아가는 거대한 생활권이다. 중심가 호텔 15층에서 내려다본 아침 도시는 마치 벌집 속을 오가는 벌 떼 같다. 신호등이 바뀌는 순간, 사람들은 자루에서 쏟아 부은 콩처럼 양방향으로 미끄러지다 이내 흩어진다. 카이로의 하늘은 늘 뿌옇다. 하늘만 그런 것이 아니다. 도시의 중심을 가르며 산 자의 마을과 죽은 자의 마을을 나누는 나일강 또한 누렇고 혼탁하다. 수천 년의 역사와 삶의 이야기가 속살을 감툰 히잡과 케피에의 겹겹의 주름 사이도 혼탁하다.

 

도시의 건물들은 거의 모두 연갈색, 모래색이다. 새로 지은 건물도 예외가 아니다. 사막의 먼지가 날아와 쌓이는 것을 피할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일강변의 고급 빌라 아파트들 역시 누런 외관을 기본으로 한다. 대신 부유함은 외벽의 색이 아니라 창 안에서 드러난다. 정갈한 커튼, 잘 맞춘 유리창, 밤에 새어 나오는 밝은 전등 빛이 그 차이를 말해준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수많은 건물들 가운데는 유리창도 없이 철근이 삐죽 솟은 채 방치된 듯 한 모습도 많다. 재개발 구역인지 폐허인지 헷갈리지만, 자세히 보면 사람의 움직임이 있다. 먼지를 대책 없이 몸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황량함 속에서도 먹고 마시고 일하고 자라난다.


                                KakaoTalk_20260106_170337830.png

  (구걸하는 이집트 아기와 엄마 뒤로 시장선거의 현수막이 요란하다 )

 

동상뉴.jpg

 전쟁 영웅 압델 모네임 리야드 장군의 동상이 복잡한 카이로 시내를 내려다 보고 있다.

 

동상은 본래 질문을 남기기 위해 세워진다

도시는 늘 자신들이 추앙하는 얼굴들을 거리 위에 세워둔다.

이 사람은 무엇을 했는가, 우리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그러나 기억이 우상으로 변하는 순간, 동상은 현재를 지배하려 든다. 의심을 허락하지 않는 숭배가 시작될 때, 동상은 가장 먼저 파괴의 대상이 된다. 1990년대 초,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레닌과 스탈린의 동상이 쓰러졌던 것처럼 말이다. 문화의 동상은 남았고, 체제의 얼굴은 철근만 드러낸 채 방치되었다.

 

동상은 상징적인 표상이다. 사회에서는 동상이나 우상을 개인이 추구하는 가치나 대상을 맹목적으로 추종하거나 과도하게 집착하는 현상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동상과 우상이 현실과 유리되면 허상과 망상이 된다. 동상과 우상은 본래 기억과 지향의 산물이다. 동상은 한 시대가 존중한 가치와 인물을 응축한 형상이며, 우상은 인간이 닮고자 했던 이상을 상징한다. 그러나 이 상징들이 살아 있는 현실과의 대화를 멈추는 순간, 의미는 빠져나가고 껍데기만 남는다. 그때 동상은 돌이 되고, 우상은 그림자가 된다. 이집트 카이로의 동상들은 이집트인들의 부와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

 

현실과 분리된 상징은 더 이상 성찰을 요구하지 않는다. 질문을 던지지 않는 존경, 검증되지 않는 숭배는 사고를 멈추게 한다. 허상과 망상은 바로 여기서 탄생한다. 허상은 현실의 결핍을 가리기 위해 만들어진 거짓된 완성이고, 망상은 비판을 거부한 믿음의 과잉이다. 동상이 현실의 모순을 설명하지 못한 채 숭배만 요구할 때, 사람들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상징 뒤에 숨는다. 우상이 삶의 복잡성을 외면한 채 단순한 구원 서사만 반복할 때, 개인과 사회는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잃는다. 건강한 사회에서 동상은 질문을 낳고, 우상은 토론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이는 파괴가 아니라 성숙이다. 상징은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어야지, 현실을 대신하는 환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살아 있는 가치란 고정된 형상이 아니라, 끊임없이 현실 속에서 검증되고 갱신되는 과정이어야 한다.

 

서울 광화문과 시청사이 꽹과리, 확성기, 대형 디스플레이, 무분별한 함성, 비닐 텐트, 수두룩한 명분의 조화(弔花) 사이를 거닌다. 시민들은 여기 어딘가 우상을 꿈꾸는 동상이 숨어 있을지, 그 우상이 내 거실의 텔레비전이나 빌딩 벽면의 디스플레이 패널에 걸려 있는지를 헤아려 보아야 한다.

적토마가 다시 날아오르는 시대다. 동상과 우상 앞에 사분오열하는 우리에게 남은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경계해야 하는가.

 

 

 

[윤향옥]

 

윤향옥.png

사단법인 서울글로컬교육연구원 대표로 이주민과 정주민의 사회통합에 대한 많은 연구를 하고 있음 / 이민 통합박사/ 대한민국 초등교원으로 41년을 봉직하고 황조근정훈장을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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