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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칼럼]꽃을 들여놓는 삶, 사람을 들여놓는 도시

  • 윤향옥 기자
  • 입력 2026.02.10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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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향옥의 수요칼럼] 꽃을 들여놓는 삶, 사람을 들여놓는 도시

 

중국 윈난성의 성도 곤명(昆明)봄의 도시라 불린다. 아시아 최대 규모의 꽃시장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몇 해 전 2월 초, 아직 한국은 냉랭한 겨울에 잠겨 있을 무렵 나는 봄의 온기와 꽃의 향연을 기대하며 이 도시를 찾았다. 긴 겨울 끝자락에서 서울로 봄을 앞당겨 데려오고 싶은 조급함이 컸다.

 

그러나 여행의 시간은 기대와 어긋났다. 특정 지역에서는 무수한 꽃들이 재배되고 기묘한 자태로 상품 가치를 높이고 있었지만, 시민의 일상 공간거리와 집, 식당과 호텔에 꽃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지는 않았다. 곤명은 꽃이 피고 비싼 값에 팔리기를 기다리는도시였다. 태생적으로 온화한 기후 속에서 꽃은 자연 일부이자 산업의 대상이었을 뿐, 생활의 언어는 아니었다.

 

 

 

20261월 중하순, 나는 베트남 남부에서 시간을 보냈다.

호찌민의 거리에는 꽃집이 유난히 많았다. 벤탄 시장, 버스 정류장, 아파트 단지 근처, 상가 어디에서나 꽃을 만날 수 있었다. 가게와 호텔, 관공서에도 꽃은 빠지지 않았다. 꽃은 장식이 아니라 생활의 기본 어휘처럼 보였다.

 

호찌민에서 남서쪽으로 약 130km 떨어진 메콩델타의 거점 도시 껀터 역시 마찬가지였다. 도시 곳곳에 노란 마이꽃(Ochna integerrima)이 오토바이의 소음과 질주 속에서도 거리를 밝히고 있었다. 껀터는 꽃이 피고 지는 자연 생태의 도시라기보다, 꽃으로 서로 인사를 나누는 문화의 도시였다. 꽃이 넘쳐나는 지역임에도 베트남 시민들은 각자의 공간과 시간 속으로 나만의 꽃을 들여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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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끼우 시장의 꽃집

 

껀터 구도심 닌끼우 지역의 재래시장은 이 도시의 삶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소다. 수상시장을 통해 부두에 닿은 생선, 고기, 채소, 과일이 질서 없이 뒤섞여 있다. 발걸음마다 생선 비늘이나 고기 핏물이 신발에 묻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고, 생선 내장과 육류부산물에서 풍기는 후텁지근한 냄새가 시장을 채운다. 현대적인 감각에 익숙한 방문객에게는 잠시의 경험으로 충분한, 금세 벗어나고 싶어지는 공간일지도 모른다

.

그런데 그 시장 한복판, 살아있는 생선, 부분 해체되고 있는 소, 돼지고기 , 살아있는 식용 개구리, 계란 가게 사이에 꽃집이 있었다.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었지만, 오히려 오랜 세월을 견뎌온 터줏대감처럼 자연스러웠다. 나는 그곳에서 10만 동(5~6천 원)어치의 꽃을 샀다. 꽃을 파는 이는 젊고 화사한 꽃집 아가씨가 아니라, 세월의 흔적이 역력한 노인이었다. 그는 국화 다발에 백합을 푸짐하게 섞어 신문지에 싸 주며 활짝 웃었다. 그 웃음 속에는 아마도 당신의 오늘이 꽃처럼 빛나길 바랍니다라는 인사가 담겨 있었을 것이다.

 

나는 닌끼우항에서, 물길을 헤치며 닿는 까이랑 수상가옥을 지나면서 오랜 전쟁과 공산당 사회주의 체제라는 질곡의 역사를 거친 이들에게, 이런 여유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묻고 있었다.

 

꽃은 잎과 줄기, 뿌리의 작용으로 피어나는 식물의 생식 기관이며 생존과 번식을 위한 핵심이다. 그러나 생태적 기능을 넘어, 꽃은 인간에게 감정의 언어가 된다. 아름다움과 풍요, 헌신과 사랑의 상징이자 어떤 과정의 절정을 비유하는 말이기도 하다. ‘꽃다운 나이’, ‘발명품의 꽃이라는 표현처럼 말이다. 동시에 꽃은 덧없음의 상징이다. ‘꽃처럼 스러지다라는 말이 품은 애절함은, 소중한 순간이 얼마나 짧고 찬란한지를 일깨운다.

 

2010년 발칸반도의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베오그라드를 방문했을 때도 비슷한 인상을 받았다. 당시 베오그라드는 유고슬라비아 해체 이후 세르비아의 수도로서 정치·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시기였다. 구걸하는 사람도 많았고, 거리의 화가들은 물감값이나 될까 싶을 정도로 싼 가격에 그림을 팔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시는 발칸 예술 문화의 중심지로서의 자부심과 품격을 잃지 않고 있었다. 집집마다 창가와 대문에는 꽃 화분이 놓여 있었다. 도보 5분 거리마다 꽃집들이 반드시 있다. “꽃 없이는 만남이 시작되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꽃은 그들의 일상 언어 이상이었다. 가난한 친구에게 방문할 때도 빵보다 꽃을 먼저 마련한다고 한다.

 

수상가옥의 어느 집 담장의 꽃뉴.jpg

 까이랑 수상가옥의 벽에 꽃이 달려있다

 

사랑과 축하뿐 아니라 이별과 슬픔, 화해까지 그들은 인간의 관계 속으로 꽃을 들여놓았다. ‘들여놓다라는 말에는 단순히 공간 안으로 무엇을 가져온다는 뜻을 넘어, 마음을 열고 신뢰하며 삶의 일부로 받아들인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한국어에 사람을 채용했다사람을 들였다라는 표현의 차이가 이를 잘 보여준다.

 

꽃을 공간에 들인다는 것은 아름다움을, 감정을, 여유를 삶 안으로 들이는 일이다. 생존에 필수적인 물건은 아니지만, 삶을 비추는 등불 같은 존재를 곁에 두는 것이다. 베트남과 세르비아의 시민들은 전쟁과 통제, 가난 속에서도 강인한 자유에의 의지와 겸손한 밀담을 꽃에 얹으며 살아낸 것이다.

 

우리나라는 건국 이래 급속도로 많은 외국인이 유입되어 다문화사회에 진입하였다. 결혼, 유학, 일자리 등으로 이웃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우리는 담장 안에서 그들의 말소리, 발소리를 들으며 함께 살아가기 위해 나는 어찌해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헤아리고 있다.

 

방문객으로의 외국인이 한국 사회에 안착하고 정착하기 위해서는 꽃을 들여놓는 마음보다 더 포용적이고 관대한 태도가 필요하다. 더욱이 그들은 우리가 필요해서 요청해서 입국한 합법적인 체류자 들이다. 극심한 한국의 더위와 추위를 잘 이겨내야만 큰 나무가 될 수 있다. 정주민인 우리가 거주 외국인의 그늘이 되어주고 온기가 되어준다면 한국 사회는 공존과 상생이 어우러진 꽃밭이 될 것이다.

 


아파트 이름이 돈값으로 매겨진 우리들의 옹색한 서울이지만, 꽃으로 삶을 빛내는 일은 여전히 가능하다. 서성이는 외국인을 우리 이웃으로 들여놓는 일 역시 국제적으로 공인된 선진국, 대한민국 국민에게 그리 버거운 것만은 아니다.

 


윤향옥.png 

 윤향옥컬럼니스트

 사단법인 서울글로컬교육연구원 대표로 이주민과 정주민의 사회통합에 대한 많은 연구를 하고 있음 / 이민 통합박사/ 대한민국 초등교원으로 41년을 봉직하고 황조근정훈장을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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