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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향옥의수요칼럼]파라다이스 코리아를 위하여

  • 윤향옥 기자
  • 입력 2026.03.11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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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9월 문화계 소식에 따르면, ‘호기심의 책이라는 제목의 800여 년 전 이집트 그림책이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 미술관 진열장에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그 그림 속에는 고대 왕국 신라가 풍요로운 섬으로 묘사되어 있다. 푸른 잎이 무성하고 동물들이 어우러진 풍경은 신라가 살고 싶은 이상향, 파라다이스였음을 보여준다.

 

8세기 당시 세계 4대 도시는 콘스탄티노플, 중국 장안, 이슬람 제국 바그다드, 그리고 신라의 서라벌이었다. 특히 서라벌은 약 100만 인구가 모여 살던 도시로, 당시 콘스탄티노플의 인구가 30만에서 40만 명 정도였음을 고려하면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풍요로운 자연환경뿐 아니라 다양한 문화와 사람들이 어우러진 도시였던 서라벌에서는 아랍인의 얼굴을 닮은 인물상이나 서양식 생활 소품이 발견된다. 신라는 이미 오래전부터 열린 세계도시였다.

 

아마도 페르시아에서 출발한 상인들은 실크로드의 끝에 위치한 이 풍요로운 나라를 고향에 이렇게 소개했을 것이다.

여기에 천국이 있다. 나는 여기에서 살며 돌아가지 않겠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의 이주근로자인 한 청년의 이야기는 다른 질문을 던진다.

인도네시아 청년 나둘’(익명)은 한국에 처음 입국했을 때 자신을 부르는 한국 이름이 새끼인 줄 알았다고 한다. 일터에서 한국인 상사와 동료들이 그를 부를 때마다 , 이 새끼야. 이리 와.”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는 고향 부모에게 무사히 정착했다는 소식을 전하며 여기서는 사람들이 나를 새끼라고 부른다고 말했단다.

 

시간이 지나 그는 그것이 이름이 아니라 욕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더 놀라웠던 것은 특정 사람만이 아니라 많은 한국인들이 일상적으로 욕을 사용한다는 점이었다.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강한 부정 표현이 안 좋다”, “화가 난다정도인데 한국의 거친 욕설 문화는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세계였다.

 

나둘은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했고 현재 석사 과정에 재학 중이다. 그는 성실하게 일하며 미래를 준비하는 청년이다. 한국 생활 7년 차인 지금, 그는 경제적으로도 어느 정도 성과를 이루었다. 통장에는 저축액이 쌓였고, 석사 학위가 눈앞에 있다. 서울의 편리한 교통, 풍부한 문화 인프라, 안정된 복지 수준 역시 그의 고향에서는 쉽게 누릴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모국으로 귀향할 것이라고 하였다.

여러 차례의 대화를 통해 그가 남긴 여러 말을 정리해보았다.

살기 위해 한국에 왔지만, 이제는 한국을 떠나기 위해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부자인데 왜 이렇게 치열한지 모르겠습니다. 한국에서는 점점 쓸쓸해집니다.”

 

나는 그 쓸쓸함을 헛헛함이라고 번역해 본다.

 

헛헛함.

우리는 그 잠재적 어의를 모를 리 없다.

극심한 가난 때문에 배고플 때 헛헛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나라를 빼앗긴 울분을 헛헛함이라고 하지도 않는다. 먹을 것이 없어 서러운 감정이 아니라, 무언가를 가져도 채워지지 않을 때 우리는 헛헛함을 느낀다. 신념이 사라지고 미래가 보이지 않을 때 사람은 몸과 마음을 추스르지 못함과 같다.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 벌어도 비어 보이는 삶, 쌓여가는 성과에도 불구하고 채워지지 않는 마음. 우리는 이를 개인의 문제로 돌리곤 한다.

그러나 그 헛헛함은 어쩌면 사회 전체에서 스며드는 증상일지도 모른다.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던 최영 장군의 이야기는 더 이상 어린이 동요로 불리지 않는다.어린이들도 금의 갖는 속성을 알고 있다. 맞춤법과 구구단을 외우지 못해도 꾸짖으며 가르치는 선생님은 줄어들었다. 떨어진 양복을 입더라도 청렴과 소신으로 살던 아버지는 무능한 가장이 되었고, 가족을 위해 묵묵히 일하던 어머니의 노동은 평가받지 못한다.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냈던 사회는 어느 순간 삶의 기준과 가치들을 잃어가고 있다. 같은 평형의 서울 아파트라도 어느 지역에 있느냐에 따라 10배 이상의 가격 차이가 나는 현실 속에서 많은 이들이 성실한 삶의 의미를 의심하게 되었다. IMF 위기 때 금 모으기에 참여하고 국기에 대한 경례에 숙연했던 시민들은 정치의 분열과 불신 속에서 점점 지쳐가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어느 순간 다시는 기적이 오지 않을 것이라고 체념하는 사회가 되었다.

 

한국은 이미 인구의 약 5%가 이주 배경을 가진 사람들로 이루어진 다문화 사회다. 인구 전문가들은 2030년쯤 외국인 체류자가 약 500만 명, 전체 인구의 약 10%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다. 저출산과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한국에서 이주민은 더 이상 주변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미래와 직결된 문제다.

 

이주민은 한 국가의 경계를 넘어 최소 1년 이상 거주하며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이다. 국제사회는 서로 다른 문화와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국가가 정책 단계에서부터 이를 고려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이제 한국 사회는 외국으로 떠나는 친지와 이웃들보다 들어오는 사람과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돈을 벌기 위해 잠시 머무는 근로자가 아니라, 함께 살아갈 이웃이자 시민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 정책과 사회적 인식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 무엇보다 먼저 질문해야 할 것이 있다.

한국인은 어떤 가치를 바라보는 사람들인가.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과 어네스트 겔너를 비롯한 많은 학자들은 한국인의 정체성 가운데 하나로 ()’을 이야기한다. 오랜 역사와 언어, 문화 속에서 형성된 정서적 유대가 한국 사회의 중요한 특징이라는 것이다. 개인보다 공동체를 중시하고 가족과 어른을 존중하는 문화 역시 한국 사회의 특징으로 자주 언급된다. 또한 근면성과 성실함, 학문과 덕성을 존중하는 선비 정신 역시 한국인의 긍정적인 자산이다.

 

이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동방예의지국이라 불리던 이 땅의 사람으로서 우리는 사람에 대한 존중과 공동체 의식을 얼마나 지키고 있는가. 우리의 아름다운 언어 속에 왜 이렇게 많은 욕이 스며들어 있는가. 서로 다른 사람에 대한 차별과 냉소는 왜 점점 더 익숙해지고 있는가. 어쩌면 거창한 이론이나 거대한 정책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아주 단순한 질문일지도 모른다.

 

여기에 천국이 있다!”

파라다이스 코리아는 멀리 있는 이상향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밝히는 여운이다.

 

윤향옥

GK뉴스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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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 서울글로컬교육연구원 대표, 교육부 정책자문위원으로 사회통합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음 /이민 통합박사/ 대한민국 초등교원으로 41년을 봉직하고 황조근정훈장을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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