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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천 칼럼]고향의 봄

  • 박주은 기자
  • 입력 2026.03.20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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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의봄.png

 

글 장재천 교수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린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꽃동네 새 동네 나의 옛 고향, 파란들 남쪽에서 바람이 불면, 냇가에 수양버들 춤추는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글자를 읽어가면서도 머릿속으로는 저절로 노래로 음미하며 눈과 고개가 움직여지는 이 고향의 봄은 민족의 명곡으로 이원수(1911~1981)14세 때 지은 것을 홍난파(1898~1941)1927년에 곡을 붙인 동요다. 이 노래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잘 아는, 외국인들이 아리랑과 같은 한국의 민요라고까지 기억할 정도로 한국인의 민족적인 정서의 원형이 곱게 스며들어있는 대표적 동요다. 누군가가 첫 소절을 시작하면 스스럼없이 따라 부르기도 하고 다 같이 콧노래로 흥얼거리기도 해서 서로가 같은 민족임을 확인시켜주는 노래이기도 하다.

 

고향의 봄이 우리 민족의 대표적인 노래가 된 데에는 우리가 너무나 아픈 역사를 지나왔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에는 고향이 곧 나라였고 고향의 정서는 잃어버린 나라의 정서와 맞닿아 있었다. 그리고 1945년 해방 뒤에도 1950년 전쟁을 겪으면서 고향을 떠나 살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피난민들은 그 가슴 아픔과 허전함을 달래기 위해 고향의 봄을 불렀고, 그 뒤 1960년대부터 해외로 일을 찾아 나간 동포들은 애국가보다 고향의 봄을 먼저 불러 떠나온 고향을 그리워했다

 

고향의 봄아리랑만큼 애창되는 이유는 길지 않은 이 노래 속에 민족정서의 원형이 그대로 들어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 노래가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위안을 주고 즐거움과 아련함을 주는 것은 노래 가사 구절구절에 표현된 고향의 모습이 올망졸망한 정겨운 산들이 유독 많은 땅에서 태어나 자란 기성세대의 전형적 고향인 농촌과 산촌 및 어촌들을 떠올리기에 충분하고, 또 어른들에게는 유년 시절의 추억까지도 고스란히 우려내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국인의 가슴에 그리움을 우물처럼 깊게 새긴 대표 동요가 바로 고향의 봄인 것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나라도 산업화를 거쳐 도시가 많이 발달하고 시골도 시골다운 곳이 얼마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 과연 이 노래는 이미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이들과 지금 태어나고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어떤 정서적이고 정감 어린 공감대가 있을까? 다른 동요들도 대부분 그렇게 되었지만... 정감 어린 초가집들은 1970년대에 시작된 새마을 운동으로 인해 빠른 속도로 없어지기 시작했다

 

이때 언제 어디서나 귀가 마르고 닳도록 들을 수밖에 없었던 새마을 노래를 보면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너도 나도 일어나 새 마을을 가꾸세. 살기 좋은 내 마을 우리 힘으로 만드세.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 길도 넓히고 푸른 동산 만들어 알뜰살뜰 다듬세. 살기 좋은 내 마을 우리 힘으로 만드세...’라고 해서 개발을 우선했던 시대 분위기를 읽을 수가 있다. ‘초가집도 없애고...’라는 가사에서 알 수 있듯이 시골도 초가집들이 사라지고 아파트들이 들어서며, 새로운 포장도로들이 생겨나 쉴 새 없이 자동차가 돌아다니는 홍수 상태로, 이제는 옛 모습을 찾기가 어려워져 용인 민속촌, 순천 낙안읍성, 아산 외암 민속마을, 영주 무섬마을 등에나 가봐야 옛 동네 모습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중국과 한국의 경제개발로 기후마저 바뀌어 하루가 멀다 하고 황사나 미세먼지로 전국이 희뿌연 상황이다. 요즘 겨울은 34미라고 하여 사흘은 춥고 나흘은 미세먼지라는 말도 다 생겨났다. 예전에 학교 다닐 때 앞으로 공해가 심각해지면 방독면 같은 것들을 쓰고 돌아다니는 이상한 미래사회의 거리 모습을 만화나 교과서에서 상상화로 간혹 볼 수 있었는데, 미세먼지로 인해 마스크 쓴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는 흔한 광경이 현실로 되어버렸다. 독감과 코로나 19로 인해 마스크 착용이 그냥 일상화된 것도 있겠지만.

 

옛 고향에서 누구나 동네 근처의 논도랑이나 시냇가에서 흔히 보았던 송사리들은 이제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시골은 지금 작은 도랑에서도 그 어떤 고기조차 눈에 띄지 않는다. 오히려 폐기물과 플라스틱, 비닐과 오물들이 눈에 들어올 뿐이다. 고향의 봄노래 가사에 있듯 옛날 우리네 꽃피는 동네들은 한 결 같이 어떤 도랑에 가더라도 작은 돌 하나를 치우면 쉽게 볼 수 있었던 가재를 이제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따라서 이런 추억과 정서를 가지고 있는 기성세대들은 전혀 다른 도시환경에서 태어나 자란 아이들에게서 낭만적인 것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런 메마른 도시환경에서 생활하는 어린이들의 마음속에는 추억과 정서가 어떻게 그려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아마도 콘크리트 고층 아파트들과 게임, 텔레비전, 컴퓨터, 스마트폰, 로봇, AI 등 이런 첨단 디지털 문화와 영상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을 것으로 짐작될 뿐이다. 이런 아이들이 훗날 어른이 되어 어떤 동요를 부르며 감상에 젖게 될지 잘 상상이 가지 않는다.

 

이제 전국 어디에서나 완연한 봄이 오고 있다. 기후가 변하다 보니 봄도 이제는 옛날과 달리 3~5월까지 3개월이 아니라 4월 한 달 정도로 짧게 보인다. 5월이 되면 이미 기온이 많이 올라가 초여름 날씨를 보이기 시작한다. 세계 곳곳에서 불안한 전쟁과 내전이 계속되고 있는 지금 우리네 마음속의 진정한 봄은 오고 있지 않는 것 같다

 

장재천완.jpg

용인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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