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정한 주거 복지는 거주자의 자존감이 집 안의 공기 속에 녹아들 때 완성됩니다.”
글 선종국 한국주거복지사협회 회장
우리는 흔히 '인테리어'나 '취향'이라는 단어를 여유 있는 사람들의 전유물로 생각하곤 한다. 당장 주거비가 걱정이고 집의 노후화가 심각한 상황에서, 벽지의 색깔이나 가구의 배치를 고민하는 것이 사치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주거복지의 진정한 완성은 단순히 '살 만한 집'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사는 사람이 '자신답게' 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있다.
취향에도 계급이 있는가?
대한민국의 주거 환경은 오랫동안 효율과 자산 가치에 집중해 왔다. 특히 공공임대주택이나 사회적 배려 대상자의 주거 공간은 획일화된 구조와 무채색의 마감재로 규격화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지원해 주는 집인데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는가" 라는 시선은 거주자의 자존감을 무너뜨리고, 집을 '잠시 머물다 떠나야 할 임시 거처'로 느끼게 만든다.
하지만 소득 수준이나 신체적 조건이 취향을 포기해야 할 이유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색깔로 방을 꾸미고, 자신의 동선에 맞는 가구를 배치할 권리가 있다. 집은 외부의 시선으로부터 나를 보호하고 나의 개성을 온전히 드러내는 '취향의 요새'여야 하기 때문이다.
유니버설 디자인: 모두를 위한 개성의 토대
모든 사람이 자신의 취향을 마음껏 펼치기 위해 전제되어야 할 것이 바로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이다. 이는 장애의 유무나 연령에 상관없이 누구나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설계를 의미한다.
* 차별 없는 공간: 신체가 불편한 어르신이나 휠체어를 이용하는 청년도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공간을 가꿀 수 있어야 한다. 낮은 스위치 위치, 넓은 문폭 등은 단순한 편의를 넘어 '공간 복지'를 보장하는 기초가 될 것이다.
* 유연한 구조: 거주자의 필요에 따라 방의 용도를 바꾸고 가구를 재배치할 수 있는 유연한 구조는, 획일화된 삶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라이프스타일을 구현하도록 돕는다.
주거복지사, 공간에 인격을 입히는 사람들
주거복지사의 역할은 단순히 물리적 환경개선에만 그치지 않는다. 거주자와 상담하며 그분이 어떤 색을 좋아하는지, 어떤 활동에 즐거움을 느끼는지 귀를 기울여야 한다.
사소한 듯 하지만 작은 방에 화분이나 어항 등을 설치해 드리고, 어두운 전등을 따뜻한 색감의 LED로 바꿔드리는 작은 변화가 한 사람의 우울감을 씻어내고 삶의 활기를 되찾게 해주는 것을 현장에서 목격하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주거복지가 지향해야 할 '주거권'의 일부가 될 것이다.
자신의 취향이 존중받는 집
집은 세상에서 가장 사적인 갤러리이면 좋겠다. 그 갤러리의 큐레이터는 외부 전문가나 집주인이 아닌, 바로 그곳에 사는 '거주자 자신'이어야 한다.
주거복지사협회는 모든 국민이 경제적 형편과 상관없이 자신의 취향이 존중받는 집에서 살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닦아나가고자 한다. 취향이 살아있는 집, 그곳이 바로 우리가 꿈꾸는 가장 따뜻한 복지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주거 복지는 거주자의 자존감이 집 안의 공기 속에 녹아들 때 완성됩니다.”
선종국 한국주거복지사협회 회장 & 경민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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