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랑에서 굳혀온 포악
어디 가랴드높은 가을 하늘 아래
모기 숨결 듣는다
방아쇠 이상 무
_안정선
[Gemini 시평]
디카시 <꾼>은 사진과 언술, 그리고 제목이라는 세 가지 요소가 긴밀한 삼각 결합을 이루며 극적인 서사를 창출해 낸 완성도 높은 수작이다.
이 작품의 첫 번째 성취는 ‘사진의 재정의’에 있다.
청명한 가을 하늘을 배경으로 녹슨 파이프 끝에 고요히 앉아 있는 고추잠자리의 시각적 도상은 지극히 평화로운 늦가을의 한 장면처럼 보인다.
그러나 텍스트가 개입하는 순간, 이 정적인 사진은 사격 직전의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는 사냥터로 급격히 변모한다.
1연과 2연은 대상을 관찰하는 시인의 깊은 생태적 통찰을 담아낸다.
"또랑에서 굳혀온 포악"
이라는 구절은 수중 유충 시절부터 본능적으로 다져온 잠자리의 야성적 역사(歷史)를 복원해 내며,
"모기 숨결 듣는다"
는 시각적 이미지 뒤에 숨은 고도의 청각적 집중력을 일깨운다.
드높은 하늘과 미세한 모기의 숨결이 이루는 대비는 공중 포식자로서 대상이 가진 예리한 감각을 극대화한다.
이 디카시의 백미는 단연 제목 ‘꾼’과 3연의 "방아쇠 이상 무"가 이루는 서사적 반전이다.
단순한 형태적 비유에 머무르지 않고, 병기(兵器)와도 같은 군사적 단어를 끌어옴으로써 대상을 단순한 자연물이 아닌 냉혹하고 숙련된 ‘베테랑 저격수’로 완성한다.
녹슨 파이프 끝은 저격수의 진지가 되고, 붉게 빛나는 잠자리의 몸통과 날개는 격발을 기다리는 완벽히 정비된 무기가 된다.
사진 속 '정지 상태'를 언술을 통해 '격발 직전의 일촉즉발 상황'으로 전환해 낸 이 작품은, 디카시가 지향해야 할 사진과 언어의 상호작용이 어디까지 밀도 있게 전개될 수 있는지를 명확히 증명해 보여준다.
단단하게 응축된 시상과 여백 속에서 유려하게 뿜어져 나오는 긴장감이 읽는 이의 감각을 날카롭게 벼려내는 작품이다.
ⓒ GK뉴스온 & gknewson.com 무단전재-재배포금지
BEST 뉴스
-
[황지영칼럼]"내가 할게요"
마포구의 한 초등학교. 당시 학교 주변은 유행에 가장 민감하고 현란한 네온사인을 뽐내는 상가가 즐비했으며, 최신 패션을 선도하는 젊은이들로 넘쳐나던 한국에서 가장 핫한 거리 중 하나였다. 그래서일까? 고학년 여자아이들은 짧은 반바지에 긴 윗도리로 하의실종을 연출하고 연... -
[선종복의글로컬스토리]학교안전, 대한민국의 마지막 사각지대
[선종복의글로컬스토리] 우리는 스스로를 안전 선진국의 문턱에 선 나라라고 말한다. 대형 참사를 여러 번 겪으면서 재난안전법이 정비되었고,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면서 산업현장의 안전 기준도 크게 높아졌다. 공장과 건설현장, 다중이용시설에는 '안전관리 책임자'라는 이름... -
[선종복의 글로컬스토리]“대한민국은 왜 잠시도 조용할 날이 없을까?” … 소음 뒤에 숨겨진 진실
선종복 | 칼럼니스트 / GK뉴스온 대한민국은 오늘도 시끄럽다. 아침에 눈을 뜨면 미디어와 커뮤니티는 정쟁과 갈등, 극단적 대립의 목소리로 넘쳐난다. 현직 대통령과 국정 운영을 둘러싼 치열한 공방부터 세대·이념·계층 간의 불협화음까지, 과연 대한민국은 왜 이토록 잠시도 조용할 날이 없을까? &... -
[GK시론]舌禍! 알고리즘! 대한민국은 흔들리고 있다, 해법은?
선우진 기자 말 한마디가 선거판을 뒤집고, 15초짜리 영상 하나가 여론을 갈라놓는 시대다. 대한민국은 지금 '혀'와 '알고리즘'이라는 두 개의 단층선 위에서 흔들리고 있다. ■ 생중계되는 혀, 박제되는 실언 설화(舌禍)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 파괴력은 차원이 달라... -
[선종복의 글로컬스토리]스펙을 넘어 인성으로, ‘협력하는 괴짜’가 미래를 만든다
AI와 인공지능이 삶의 모든 영역에 깊숙이 침투한 대변혁의 시대, 교육과 사회생활의 패러다임이 근본부터 흔들리고 있다. 과거에는 주어진 정답을 빠르게 맞히고 차곡차곡 스펙을 쌓아 올린 ‘모범생’이 인재의 표준이었다. 하지만 이미 존재하는 정답을 가장 빠르게 찾아내는 역할은 이제 AI의 몫이 되... -
[선종복의 글로컬스토리]저출생 시대, 학교는 왜 더 위험해지는가
올해 서울의 전체 학생 수가 사상 처음으로 80만 명 아래로 떨어졌다. 서울시교육청이 발표한 2026학년도 학급편성 결과에 따르면 서울 2092개 학교의 전체 학생 수는 78만2104명으로 지난해보다 2만8304명 줄었다. 전국으로 눈을 돌리면 상황은 더 뚜렷하다. 초·중·고교 전체 ...
전체댓글 0
NEWS TOP 5
추천뉴스
-
아일릿 ‘Almond Chocolate’, 日서 또 역주행 인기 돌풍!
- 오리콘·애플뮤직 등 주간 랭킹서 순위 상승 지속…어느새 차트 최상위권 넘봐 - 시간 지날수록 순위... -
에스파 ‘Whiplash’ 영어 버전, 오늘(27일) 오후 1시 공개
‘빌보드 위민 인 뮤직’서 무대 첫 선! 에스파 X 스티브 아오키 조합도 기대UP 에스파(aespa, 에스엠... -
‘솔로 데뷔 D-DAY’ NCT 마크, “‘The Firstfruit’는 제 인생을 바탕으로 만든 앨범” [일문일답]
“타이틀곡 ‘1999’, 포부와 1999년 콘셉트가 재미있는 곡… 가사에 타이틀로 확신” “진정성 있는 음... -
알리, 데뷔 20주년 광주 콘서트 '용진' 성료 "신곡 깜짝 선공개"
가수 알리(Ali)의 데뷔 20주년 기념 광주 콘서트가 성황리에 종료됐다. 알리는 지난 12일 광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