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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카시]수직의 붉은 길

  • 안정선 기자
  • 입력 2026.10.16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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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을 기던 날들

차가움 감아 안고
제 몸을 세웠나니

노둣돌 될지어라

 

 

_안정선

 

 

[Gemini 시평]

디카시는 찰나의 영상과 엄축된 언어가 만나 새로운 시적 스파크를 일으키는 양식이다.
문장이 사진을 해설하거나 다그치지 않고, 영상의 여백 속으로 기꺼이 스며들 때 디카시 고유의 깊이가 완성된다.
이러한 디카시의 미학적 기준에서 볼 때, <수직의 붉은 길>은 사진 속 사물과 언어가 완벽한 상호작용을 이루어 낸 단단하고 출중한 수작이다.
사진 속에는 녹슨 철근 지주대와 그것을 감싸 쥔 붉은 끈, 그리고 그 끈을 발판 삼아 하늘을 향해 잎을 내미는 식물이 담겨 있다.
자칫 평범한 수목원의 고정장치에 불과했을 이 풍경은 시인의 시선을 거치며 하나의 숭고한 서사로 탈바꿈한다.
시인은 주어를 감춤으로써 사진과 텍스트 사이에는 팽팽한 긴장감과 깊은 여백이 생겨난다.
독자는 바닥에 나뒹굴던 미약한 존재가 시련을 감싸 안으며 제 몸을 세워 올리는 과정을 사진 속 비주얼과 대조하며 스스로 발견하는 시적 쾌감을 얻는다.
특히 제 몸을 세웠나니와 노둣돌 될지어라로 이어지는 선언적이고 예언자적인 어조는 작품의 격조를 대폭 올려놓는다.
보잘것없던 존재가 척박한 환경을 견뎌내고 스스로 일어서는 것에 그치지 않고, 마침내 다른 생명(식물)이 수직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제 몸을 내어주는 '노둣돌'이 되기를 축원하는 대목은 깊은 울림을 준다.
사진 속 붉은 지주대는 더 이상 차가운 인공물이 아닌, 태양을 향해 나아가는 '수직의 붉은 길'이자 이타적 생명력의 사다리로 거듭난다.
찰나의 시적 발견을 정갈하고 단단한 언어로 응축해 낸, 여운이 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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